연극 '저녁'은 끔찍하다. 폭력, 집착, 자아의 분열, 살인, 재탄생에 관한 극단적으로 왜곡된 이미지들이 관객을 포위한다.대사는 아주 적고 짧다. 움직임도 극도로 압축돼 있다. 말없음과 정지의 고요한 시간은 숨막히는 긴장으로 관객을 짓누른다.
째깍거리는 시계소리, 사랑스런 자장가, 아비규환의 비명 같은 전자음 등 장면 전환에 쓰이는 음향도 견디기 힘든 압박감으로 다가온다. 공연시간 1시간 10분이 악몽 같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섬뜩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윤형섭 작, 성준현 연출로 5일부터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이 작품은 매우 독특하고 실험성이 짙다.
연극의 기존 어법을 파괴하고 극작과 표현의 새로운 양식을 보여준다. 그로 인한 강한 충격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문제작이다.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심영민), "난 너 밖에 없어"를 되뇌며 집착하는 엄마(김가인)를 흰 잠옷의 미소년(김기양)과 검은 예복 미소년(김현옥)이 살해한다.
부모살해라는 끔찍한 통과의례를 마치고 둘은 알몸이 되어 춤추다가 다리부터 녹아 하나가 되면서 청년(박한영)으로 다시 태어난다.
소년 역 두 여배우와 청년 역 남자배우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정면으로 서 있어도, 그것이 성적인 환상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벗은 몸이 암시하는 탈출 또는 재탄생의 이미지가 하도 강렬해서 딴 생각 할 틈이 없다. 14일까지 공연한다.
오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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