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헌정사에서 중앙당 사무처와 지구당 조직을 체계적으로 갖춘 최초의 정당은 공화당이었다. 자유당 등 그 이전의 주요 정당들은 원내 중심이었고 지구당 조직도 취약했다.5ㆍ16 군사정권의 핵심 실세였던 JP(김종필 현 자민련 명예총재)는 대만의 국민당과 사회주의 국가들의 공산당 조직을 모델 삼아 중앙당의 사무처를 강화하고 전국 지구당을 체계화한 공화당을 만들었다고 한다.
공화당은 정당사상 처음으로 사무처 요원 공채도 실시했다. 공화당 공채 출신의 한 인사는 당시에 30대의 JP가 군복 차림으로 당직자들에게 국내외 정세를 설명하며 국가의 비전을 제시하던 장면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고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10ㆍ26사태로 공화당이 해체된 뒤 1980년 신군부가 창당했던 민정당도 공채를 실시했는데 공화당과 민정당의 공채출신 인력은 요즘도 정당가에서 전문성과 능력을 인정 받아 정당 실무의 요직을 담당하고 있다. 그들 중의 일부는 현 여권으로도 편입됐다.
최근에 문제가 된 민주당의 '2001년 조직강화 지침'은 내용과 발상으로 보아 구 여권정당조직 마인드를 가진 실무자가 작성했을 개연성이 다분하다.
공화당에 기원을 둔 구 여권 정당들이 조직관리를 체계화함으로서 정당활동 수준을 한 단계 높인 점은 인정된다.
하지만 구 여권 정당조직은 엄청난 돈으로만 가동될 수 있는 조직체계라는 데 문제가 있었다. 그 돈은 정경유착 등 비정상적 방법으로 조달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구 여당들의 이면사는 불법적ㆍ비정상적 정치자금 조달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당의 '2001년 조직강화 지침'도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조직확장 및 관리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전국 227개 지구당 간부와 동책, 투표구책, 리ㆍ통책 등 11만명에 대해 6월까지 1박2일 또는 당일 교육을 실시한다는데 구 여당 시절 연수경험이 풍부한 한나라당의 계산법에 의하면 1인당 10만원씩 잡아도 110억원의 돈이 들어간다.
연말까지 56만명의 정예당원을 확보하고 이를 기간요원으로 해서 전체 유권자의 10%인 330만명까지 당원을 늘린다면 여기에는 또 얼마나 돈이 들어갈까.
99년 선관위에 310만명의 당원신고를 한 한나라당은 입당원서 1장에 10만원을 주면 3,300억원, 1만원을 주더라도 330억원이 들어간다고 계산하고 있다.
세상이 달라져 그렇게까지 돈이 들어가지 않는다 해도 조직 및 당원 확장을 기본 개념으로 하는 세력확장은 물먹는 하마처럼 돈을 먹는다.
김대중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정치개혁의 핵심 방향은 돈이 덜 드는 정치가 가능한 여건 조성이다.
그런 개념 아래 한 때 지구당폐지까지 논의됐고 현실적으로 소선거구제하에서 지구당 폐지가 어렵다고 해서 지구당 축소를 위해 유급사무원을 두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지 않았던가.
민주당의 '2001년 조직강화 지침'은 명백히 이러한 정치개혁 방향을 역행하고 있다. 3,300만명에 달하는 전체 유권자의 성향을 파악하겠다는 것도 지극히 구 여당적 발상이고 국민의 기본권 침해 소지가 농후하다.
국민의식과 정치환경이 변하면 거기에 맞는 새로운 득표전략과 개념이 창출되어야 한다. '강한 여당'의 비밀은 과거로의 퇴행이 아니라 시대흐름에 맞는 창조적 변신에 있다는 사실을 현 여권은 모르는 것 같다.
이계성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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