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은 정말 어려운 병이다. 그 원인을 놓고 과학자들이 씨름한 것이 한 세기가 넘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린 일은 없다.그런데 바로 암의 원인을 놓고 덴마크 코펜하겐대학교 병리학 교수 휘비거(J. A. G. Fibiger, 1867~1928)가 1926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 기세라면 지금쯤 암이란 병은 물리치고도 남았어야 했다. 하지만 인류는 아직도 암이란 불치의 병 앞에 전전긍긍하고 있지 않은가?
당시 노벨상위원회는 휘비거가 '선충(腺蟲)에 의한 암종(癌腫): Spiroptera carcinoma' , 즉 미세한 기생충에 의한 암의 발생을 증명해 상을 주었다고 기록했다.
어느 시상식장이나 극찬의 소리가 나오겠지만 그에게도 '우리 시대 최고의 업적'이란 말이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암에 대해 이미 접촉설 등 많은 이론이 있었지만 기생충이나 병균, 그 밖의 물질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모두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1913년 휘비거는 처음으로 암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음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1907년 휘비거는 3마리 생쥐의 위암 중앙부에서 선충을 발견했다. 그는 이 선충과 암종 사이의 관련성을 실험하다가 선충에 숙주동물이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1,000마리 이상 생쥐를 조사했으나 실패한 끝에 그는 결국 설탕공장에서 그런 위암에 걸린 생쥐 여럿을 발견했다. 공장에는 바퀴벌레가 가득했는데 바로 바퀴가 숙주였다는 것이다.
휘비거는 선충의 유충을 가진 바퀴벌레를 생쥐에게 먹여 위암을 발병시켰다.
당시로선 꼭 선충이 아니더라도 반복되는 자극이 암을 일으킨다는 종래 학설을 결정적으로 증명해 주는 첫 실험이라고 판단했다. 암 연구에 새 지평을 연 업적이라고 격찬하게 된 까닭이다.
그러나 곧 이런 발암성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고 드러났다. 오히려 1915년 일본의 야마기와 쇼사부로(山極勝三郞ㆍ1863~1930) 등은 토끼의 귀에 콜탈을 발라 암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발암물질'이라는 말은 흔히 듣는다. 여러 가지 화학물질은 암을 일으킨다는 것이 확실하게 밝혀져 있기 때문이다. 거기 비하면 휘비거의 기생충 발암설은 그리 중시되지 않는다.
그래서 '잘못된 노벨상'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휘비거가 되어 버렸다.
박성래
한국외국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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