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동설한에 내복을 보내준 외국인 양부모들은 지금 살아계실까." "이제는 우리가 다른 나라 어린이를 도울 차례입니다."4일 오후 1시 서울 인사동 한 음식점에서는 이색적인 모임이 열렸다. 참석자들은 전쟁의 상처로 고통받던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양친회(養親會)'를 통해 외국인 가정으로부터 생활비와 생필품 등을 '원조' 받았던 이른바 '구호세대'들.
이들은 당시 은혜를 못잊어 '플랜 코리아'(양친회 후신)를 통해 후진국 어린이를 돕고 있는, 국경을 넘어선 사랑의 메신저이기도 하다.
참석자 중 막내뻘인 유영수(劉榮洙ㆍ42ㆍ대전 대덕구 오정동)씨는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생선 날품팔이로 생계를 이어갈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다"면서 "그분들은 우리집 가장이나 다름없었다"고 회고했다.
조그만 컨테이너에서 열쇠ㆍ구둣방을 운영하는 유씨는 풍족하지는 않지만 지난해 6월부터 열살짜리 베트남 여자아이의 양아버지가 됐다.
유씨는 "전쟁 후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라는 등 어린 시절 나를 연상시킨다"면서 "큰 돈은 아니지만 매달 보내는 2만원이 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아마비로 거동이 불편한 유씨는 뇌성마비 남녀 어린이를 자신의 승용차로 매주 병원 통원 치료를 받게 해주는 등 또다른 선행을 하는 것으로 밝혀져 다른 참석자들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유씨의 동생 영출(榮出ㆍ38)씨는 "외국에서 선물 오는 날이라며 형의 손을 잡고 봉천동에서 남영동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어렴풋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전쟁 직후 학용품과 옷 등을 원조받았다는 이장훈(李將勳ㆍ52ㆍ대한파카라이㈜ 사장)씨는 "당시 양부모가 보내준 옷을 쫙 빼입고 외제 필통을 들고 거리에 나서면 주위에서 입을 벌리고 부러워했다"면서 당시 덕수궁에서 찍은 빛바랜 사진을 내놓았다.
"최근 자신이 돕고 있는 베트남 아이가 보낸 편지를 보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는 이씨는 "허물어져가는 단칸방에서 6남매가 살았던 나와 너무 똑같아 동병상련을 느낀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들은 이날 사랑을 받았으니 되물려 주자는 취지로 모임 이름을 '내리사랑양친회'로 지었다. 원조 1세대이자 최고참 격인 이씨가 회장으로 선출됐다.
내리사랑회는 일단 옛 회원들을 규합해 구심점이 되는 한편, 외국 양부모를 찾아내 회원들과 연결시켜줄 계획이다.
이씨는 "당시 도움받은 분이 수십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안다"면서 "그들이 참여해 외국은 물론 우리나라 불우 어린이 돕기에 적극 나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모임은 이씨 등 6명만 참여했지만 전북 익산에서 늘푸른농원을 운영하는 송호윤(宋鎬潤ㆍ52)씨 등이 회원 가입을 알려오는 등 벌써부터 '구호세대'들의 관심이 높다.
플랜 코리아 김소희(金素熙) 과장은 "옛 양친회 회원들이 모임을 만들자는 요청이 쇄도해 이같은 만남을 주선했다"면서 "은혜를 잊지 않고 갚으려는 이들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양친회란
1953년 국제아동보호기구인 플랜 인터내셔널이 전쟁 고아들을 돕기 위해 세운 한국지부. 외국 가정과 수혜국 어린이를 1대1로 맺어주는 양부모 결연사업을 펼친다고 해서 이같은 이름이 붙었다.
양친회는 79년까지 한해 2만5,000여명씩 26년간 수십만명의 어린이를 도왔다.
96년부터는 한국이 수혜국에서 원조국으로 지위가 바뀌어 플랜인터내셔널 코리아(www.plankorea.or.kr)로 명칭을 변경, 현재 국내 900여명의 회원이 베트남, 에티오피아, 과테말라 등 후진국 어린이 1,000여명을 돕고 있다.
4일 '내리사랑양친회'를 발족시킨 이장훈,유영수,유영출,권중현(뒤쪽 왼쪽부터 시계방향)씨가 손을 잡은 채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강 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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