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2월3일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노동운동가 시몬 베유가 파리에서 태어났다. 1943년 런던 근교의 애쉬퍼드에서 몰(歿).베유는 파리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교사와 공장 노동자 생활을 했고, 스페인 내전에도 공화파로 참가했다. 그는 드골 곁에서 항독 레지스탕스를 지원하며 집필에 몰두하다가 결핵과 영양실조로 짧은 삶을 마쳤다.
시몬 베유라는 이름은 포착하기 힘든 이름이다. 한 쪽에서 그 이름은 신화의 너울을 쓰고 울려 퍼지고 있지만, 다른 쪽에서, 예컨대 프랑스 철학사에서, 그 이름은 모호하고 흐릿한 채 말소를 기다리고 있다.
모호하고 흐릿하다는 것은 그 이름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그 이름이 한 곳에 가둘 수 없을 만큼 넓고 유동적이라는 뜻이다.
시몬 베유라는 이름은 멈춰있지 않고 흐른다. '억압과 자유''뿌리박기' '중력과 은총' 등의 책을 통해서 이 철학자-작가-노동자-전사가 혁명에 대하여, 마르크시즘에 대하여, 집단적 환상에 대하여, 기계시대에 대하여, 믿음 없는 교회와 교회 없는 믿음에 대하여 던져놓은 수많은 발언들은 섣부른 종합을 통한 어떤 '테제'로의 환원을 매몰차게 거부한다.
그의 파란의 삶을 일관되게 강박한 것은 '진리 속에서 진리를 행하며 진리에 동화하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두려움이었다. 그는 그 두려움에 이론으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맞섰다. 그 삶은 램프에 달려들어 자신을 불태우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나방 같은 삶이었다.
그의 램프는 공장과 전장이었지만, 그 싸움의 현장에서 그는 단지 노동운동가가 아니라 스스로 노동자였고, 단지 반파쇼 지식인이 아니라 스스로가 반파쇼 전사였다.
기억해 둘만한 그의 말. "자신과 홀로 마주서 있는 정신 속에서만 사상은 형성된다.
집단은 결코 생각하지 못한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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