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두라흐만 와히드(60)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조셉 에스트라다 필리핀 대통령에 이어 권좌에서 축출될 것인가.인도네시아 검찰은 2일 의회(DPR)가 와히드 대통령의 부패 혐의에 대한 수사를 공식 요청함에 따라 관련 자료 등을 수집하는 등 향후 법적 절차에 들어갔다. DPR은 이에 앞서 1일 와히드가 부패의혹에 가담했다는 의회 특별위원회의 보고서를 찬성 393, 반대 4 로 승인한 데 이어 탄핵을 위한 첫 단계인 해명요구서 발부안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총 500석의 DPR에 참여하고 있는 10개 정파 중 와히드가 이끌고 있는 국민각성당(PKBㆍ51석) 등 2개를 제외한 8개 정파가 와히드의 반대편에 섰다. 특히 최대 다수당으로 해명요구서 발부에 반대해왔던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부통령의 인도네시아 민주투쟁당(PDIPㆍ153석)과 비선출직인 군출신 의원 38명 전원이 이날 전격적으로 와히드에 등을 돌려 충격은 더 컸다.
앞으로의 최대 관심은 인도네시아 최고 의결기관이자 대통령 탄핵소추권을 갖고 있는 국민협의회(MPR)의 비상총회 소집여부. DPR 의원 500명과 이익ㆍ직능단체 대표자 200명으로 구성돼 있는 MPR이 소집된다는 것은 와히드가 의회의 신임을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누구도 탄핵 투표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아미엔 라이스 MPR 의장도 이날 특별총회 긴급소집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혀 사태가 더욱 긴박해졌다. 물론 와히드에게는 앞으로 4개월 동안 두 번까지 허용된 해명요구서에 답변할 기회가 보장돼 있어 의회가 어떤 결정을 내릴 지는 미지수다. 와히드가 의회에 출석, 답변할 수 있는 두 차례의 소명발언 중 의회가 한번이라도 이를 받아들일 경우 탄핵절차는 사실상 종료된다.
인도네시아 정치 분석가들은 메가와티 부통령을 와히드의 '목줄' 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보고 있다. DPR을 움직일 수 있는 최대 다수당의 당수인데다 부통령으로서의 영향력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의 딸이자 부통령이란 점 때문에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에 비유되고 있는 메가와티가 아로요처럼 반 와히드 전선에 적극 가세할 경우 탄핵 절차와는 별개로 와히드가 조기 사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와히드 대통령은 2일 기자회견을 통해 대국민 사과성명과 함께 의회활동에 적 극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부패 혐의에 대해선 여전히 부인해 의회의 해명요구에 대한 그의 행보가 탄핵 정국의 1차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침묵의 메가와티
압두라흐만 와히드 대통령의 장래에 가장 큰 결정력을 가진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부통령은 인도네시아 국민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는 정치인이다.
인도네시아 국부인 수카르노 전 대통령의 맏딸로 199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수하르토 전 대통령을 대신할 수 있는 지도자로 부상했다.
수하르토는 1996년 정치공작으로 메가와티를 인도네시아민주당(PDI) 당수직에서 축출, 정치생명을 끊으려 했지만 오히려 그에 대한 지지는 더 높아졌다. 메가와티의 인기는 수하르토의 탄압에 굴복하지 않은 민주화 지도자라는 상징성에서 연유한다.
수하르토가 하야한 후 치러진 1999년 10월 대선에서 메가와티는 최대 정당인 인도네시아민주투쟁당(PDIP) 후보로 와히드와 치열한 접전을 벌였으나 패배했다. 와히드의 요청으로 부통령에 취임해 지난 15개월동안 경쟁과 협력의 미묘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메가와티는 아미엔 라이스 국민협의회(MPR) 의장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의 탄핵 시도로 와히드의 권력기반이 흔들렸던 지난해 10월에는 와히드 하야 반대를 천명함으로써 와히드의 버팀목이 됐다. 또 수백만명에 이르는 지지자들에게 와히드 반대 시위에 가담하지 않도록 자제를 요구해왔다.
와히드 유고시 헌법상 승계권자인 메가와티는 최근의 와히드 탄핵 움직임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와히드는 메가와티가 여전히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고 공언하고 있으나, 향후 상황전개에 따라 입장을 달리할 가능성은 남아있다.
메가와티는 과거 주요 사건 때마다 군부를 옹호, 군부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그러나 인기는 높지만 국정운영 능력은 미지수라는 평가가 늘 따라다닌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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