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그룹의 '세계경영'은 결국 국제적 사기극이었다.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대우의 사기수법은 일반의 상상을 넘는 것이었다.본격적인 사기극은 자기자본이 완전히 잠식돼 부채비율을 산출할 수 조차 없게 된 1998년부터 시작됐다.
김우중 전 회장 등은 당시 세계 각국의 지사에 급전을 보내 "해외건설공사 실적을 반영한 재무제표를 만들어 올리라"고 통보했다.
당시 실제 건설공사를 하는 곳은 한군데도 없었으나 각 지사에서는 즉석에서 인도 자동차공장 건설공사 등 그럴 듯한 해외건설공사를 10개나 '창조', 순식간에 5,29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창출해내는 '신기'를 보였다.
대우는 자산에 반영해서는 안 되는 공사대금 감액분도 자산에 포함시켰다. 리비아 정부와의 약속에 따라 감액한 공사대금 1,986억원을 버젓이 자산 항목에 포함시켜 부실한 재무제표를 보강시킨 것.
우크라이나 자동차 공장 사기극은 웬만한 전문 사기꾼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작품'. 김 전 회장은 측근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우자동차 우크라이나 현지 공장 설립을 강행했으나 자금난으로 제대로 가동도 못하는 공장을 보고 선뜻 대출을 해 줄 금융기관은 없었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완성차 분해조립'수법. 즉, 국내에서 생산된 완성차를 우크라이나 국경지방까지 수송한 다음 이곳에서 일단 완전 해체, 조립품 형태로 만든 뒤 국경을 넘어 현지 공장에서 조립하는 묘기를 부린 것이다.
고전적인 서류조작 수법도 사용됐다. 98년부터 국내대출은 물론, 해외차입도 어렵게 되자 NTL(Northwood International)이라는 유령회사를 설정, 이 회사로부터 680만달러 상당의 물품을 구매해 제 3국에 수출하는 중계무역을 하는 것처럼 서류를 조작한 뒤 수입대금을 해외에 송금하는 형식으로 외화를 빼돌린 것.
또 97년10월~99년3월까지는 슬로바키아 등 해외 자동차 판매법인장들에게 자동차 수출대금을 해외계좌로 송금할 것을 지시, 거액의 외화를 빼돌리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빼낸 외화만 해도 40억5,000만달러.
검찰은 "불법조성된 돈 중 김 전 회장의 개인계좌나 다름없는 영국 런던의 비밀계좌 BFC(British Finance Centr)로 송금된 돈이 무려 200억달러에 달한다"며 "결국 대우그룹은 몰락 순간까지 총수의 재기를 위한 종자돈을 마련하기 위해 국제적 사기극을 벌인 셈"이라고 말했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검찰, '200억달러 秘계좌' 규명 총력
검찰이 2일 장병주 전 ㈜대우 사장 등 전 계열사 임원 5명을 추가 사법처리하고 대우그룹의 분식회계 규모도 드러남으로써 이번 수사는 사실상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검찰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대우 비자금 수사에 나설 분위기다. 특히 김우중 전 회장이 비밀리에 관리한 BFC계좌로 빠져나간 200억달러의 사용처 규명에 수사력이 집중될 전망이다.
김 전 회장은 1997년 10월~99년 7월 중계무역을 한 것처럼 허위 수입서류를 작성, 26억달러를 BFC에 송금하고, 98~99년 대우자동차 수출대금 15억달러를 국내로 반입하지 않고 BFC에 은닉했다.
또 97~99년 해외에서 직접 불법 차입한 157억달러와 1,100만유로, 40억엔도 BFC로 흘러들어갔다. 검찰은 BFC로 빠져나간 자금이 현지 법인의 해외투자 등에 쓰인 것으로 보면서도 상당액이 김 전 회장의 해외재산 구입 등 개인 및 불법 용도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의 직접 책임하에 ㈜대우 국제금융팀 4~5명이 비밀리에 계좌를 운용한 점 등이 그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검찰은 이들 직원들을 추궁, 김 전 회장이 BFC계좌 자금을 해외재산 구입 등에 사용하고 상당액은 비자금으로 조성돼 국내로 반입된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은 BFC계좌로 흘러든 자금이 워낙 방대하고 계좌를 관리했던 직원들도 부분적으로 밖에 관여하지 않아 실체파악을 위해서는 김 전 회장에 대한 조사가 필수적이라고 판단, 자진 귀국을 강도높게 압박하고 있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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