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이상을 살아온 서울을 떠날 때 은근한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 생각난다. 그 두려움은 새롭게 살아야 하는 이 곳 원주라는 곳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무언가 중심 또는 중앙에서의 삶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던 것 같다.실제로 작은 지방 도시에서 커가는 아이들과 함께 지냈던 지난 7년의 시간들은 참으로 많은 즐거운 기억들로 새겨져 있다.
맑은 강가에 나가 큰 돌을 뒤집으며 다슬기를 주운 일, 이른 봄 여린 진달래 잎을 따다 화전을 부쳐먹고, 벌레 한 마리도 무서워하던 아이가 손으로 온갖 곤충 특히 매미와 잠자리를 가득 잡아와 아파트 베란다에 풀어놓고 관찰하고 키운 일.
교통체증이 없는 도시는 분주하지 않아 좋고, 마침 정보화의 확대로 개별 가구에까지 연결된 초고속 통신망은 더 넓은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통로의 구실을 해주어 즐거웠다.
여전히 1~2주일에 한 두 번씩 세미나나 모임 때문에 서울을 오가게 되는데, 요즈음은 오히려 서울에 진입하면서 들어오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와 숨막힐 듯한 차량의 행렬을 보며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으니 나도 많이 변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지방에서 살아가는 것이 결코 낭만적인 일만은 아니라는 것도 분명하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 나라의 모든 시스템은 서울을 위시한 수도권 중심으로 편제되어 있고, 이에 따라 인구의 절반 가량이 그 곳에 살고 있다.
따라서 그 곳을 벗어나 살고 있는 사람들은 주변인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떼어낼 수가 없다. 정치 행정 경제 교육 체계가 수도권 중심으로 움직일 뿐만 아니라 기존의 질서에 도전하고 저항하는 시민운동이나 스스로 주변이라며 중심을 전복하고자 하는 대항문화적인 운동도 본거지는 전부 서울이다.
공룡처럼 거대한 서울 및 수도권의 중심성은 너무나 견고하여 지방의 소리, 주변의 소리는 중앙으로 건네질 통로도 부족하고 귀 기울여 들으려는 노력도 부족한 것이다.
새롭게 출범하는 여성부를 보면서도 중심과 주변의 커다란 간극을 새삼 되새겨 보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자리는 항상 주변이었다.
여성문제를 이야기하거나 여성운동을 한다는 것은 소외되어 주변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아내는 작업이었다.
이제 그 작업이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어냈고 중앙 행정제도의 한 기구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러나 1실 3국의 미니 부서로 거대 행정체계 안에서 국민 절반인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으리라 예측된다.
여성부에 대해 여성의 지위를 강화하고, 여성의 복지를 증진시켜야 한다는 각계 각층의 요구가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어 비슷한 말을 반복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단지 지방의 시각에서 볼 때 다른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여성부 역시 멀리 있다는 생각을 전하고 싶다. 지역에 사는 여성들이 지역을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모습은 참 인상적이다.
여성 교육이 열리면 열성껏 참여하며 자원 봉사에 힘쓰고 소외된 여성의 인권 문제에 대해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여성들이 참 많다.
그러나 깨어있는 여성들의 노력에 비해 이들의 소리를 담아내 줄 정책의 통로는 거의 막혀 있다. 중앙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이 입안되어도 도를 거쳐, 시 군지역까지 내려오는 시간은 너무 많이 걸리고, 자치단체장의 취향에 따라 상당 부분은 걸러지고 없어진다.
여성부만이라도 중앙하달식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지역 여성의 생동감있는 목소리에서 출발해서 정책을 기획하고 시행하는 부서가 되기를 바란다. 여성부가 남녀간의 평등뿐만 아니라 지역간의 평등까지도 이루어내기를 바란다.
강이수ㆍ상지대인문사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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