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여성 감독 안토니아 버드는 1994년 신부의 동성애와 근친상간을 소재로 한 '프리스트' 로 데뷔하여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목회자의 순수한 감정과 종교적 사명감에 질문을 던지는 이 영화가 비난을 받은 이유는 과격한 소재 때문이고, 찬사를 받은 이유는 사회의 편견과 위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도 관객에게 판단의 몫을 남긴 탄탄하고 여유있는 연출력 때문일 것이다.
버드 감독은 불안한 청춘의 초상을 담은 '드류 베리모어의 영 러버' (1995년작)와 5인조 갱단의 내부 분열을 그린 '페이스' (1997년작)를 거쳐 1999년 식인 공포영화 '블러드 솔저 (Ravenous)' (18세, 폭스)를 내놓았다.
짧은 영화 이력만으로도 버드 감독의 남다름을 감지할 수 있는데, 충격요법을 노리는 소재 선택에 함몰되지 않아 더욱 신뢰가 간다.
인육을 먹는 인간 이야기라고 하면 '아프리카 몬도가네' 류의 다큐멘터리나, 톱을 들고 설쳐대는 '텍사스 살인마' 류의 공포 영화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물론 '블러드 솔저' 에는 도끼로 신체를 절단하는 장면, 낭자하게 흐르는 피, 인육 스프를 먹으며 입맛을 다시는 장면 등이 있어 눈을 감고 싶어진다. 그러나 이런 묘사가 반사적인 자극이나 공포를 의도한 것이 아니란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미국은 서부로 영토 확장의 야망을 불태우고 있지. 4월이면 금을 찾아 사람들이 몰려 올거야. 이 나라는 전세계를 손아귀에 넣으려고 양 팔을 뻗고 있어.
우린 거기 따를 뿐이야. 복종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야" 라는 살인마의 대사는 감독의 의도를 너무 쉽게 드러낸 감이 있지만, 전세계를 좌지우지하려는 미국의 야망, 만족을 모르는 현대인의 물욕을 빗댄 것이라 하겠다.
시대적 배경이 멕시코와 미국간의 땅 싸움이 치열했던 1847년이며, 공간적 배경이 골드 러쉬 붐을 따라 많은 이들이 오가던 캘리포니아의 스펜서 요새란 점은 그래서 꽤 설득력을 갖는다.
'프리스트' '페이스' 에 이어 로버트 칼라일이 다시 캐스팅되어, 채워지지 않는 굶주림으로 교활하게 머리를 굴리는 식인 장교로 분했다.
'L.A. 컨피덴셜' 로 할리우드 진출에 성공한 호주 배우 가이 피어스가 그에게 맞서 고뇌하는 식인 병사로 출연했다
감상 포인트/ 비위·심장이 약한 분은 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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