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마스, 푸코, 월러스틴, 부르디외, 기든스 등은 분과학문의 담을 헐고 자신만의 새 학문세계를 구축하며 한 시대를 이끌어온 사상가이자 사회이론가다.이들을 관통하는 첫번째 키워드는 '비판'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부터 근대문명의 밑바닥까지 현미경을 대고 훑듯이 하며 사회체제의 근본 토대를 다시 사유하고자 했다.
20세기 후반은 '사회 비판의 르네상스기'와도 같았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 푸코의 '감시와 처벌',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제',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기든스의 '사회구성론' 등 이제는 사회이론의 고전으로 자리매김된 이들의 주요 저작이 1960년대 이후 쏟아졌다.
이는 또한 '비판의 백가쟁명' 상태도 보여준다. 비판적 대안의 보루였던 마르크스주의나 현실 사회주의 운동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비판의 단일 목표와 지향점이 와해됐기 때문이다.
이들의 성과나 이론적 정합성을 둘째로 치더라도, 돌파구를 상실한 세대에게 다채롭게 전개된 비판의 물결은 매력적인 목소리이자 사상적 외투로 다가왔다. 1980년대 후반 이후 본격적으로 소개된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엮은 '현대 비판 사회이론의 흐름'(한울 발행)은 20세기 후반 비판이론의 궤적을 훑은 책이다. 김호기 이수훈 신광영 정수복 등 12명의 소장 사회학자들이 각 비판이론가의 사상을 검토하고 정리한다.
이는 최근 우리 학계의 경향과도 맞물려 있다. 20세기에서 21세로 넘어가는 시기적 문제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학문적 과도기를 맞고 있는 인문사회과학으로서는 학문적 정리와 쇄신이 절실한 상황이다.
특히 비판적 학문은 서구이론에 대한 의존이 지나치다. 편집자 스스로 밝히듯이 "관념적 의식과 구체적 현실간의 괴리를 심화 시킨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 책도 이런 맥락에서 쓰여졌다.
책은 미국 영국 프랑스 북구 등 지역에 따라 4부로 나눠 11명의 비판 이론가와 페미니즘 비판이론을 다루고 있다.
근대의 인식 틀 자체를 문제 삼으며 주체 형성과 권력의 관계를 끄집어낸 푸코, 일상적 상호작용 속에서 비판의 근거를 확립하며 신사회 운동의 이론적 터전을 마련한 하버마스, 세계체제라는 새로운 분석단위를 부각시킨 월러스틴 등 비판이론가들의 성과와 이론적 쟁점을 짚어나간다.
이 책은 이들이 철학, 역사학, 정신분석학 등을 관통하면서 사회이론의 설명력과 분석력을 높이고, 이론과 실천의 결합을 적극 모색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책이 지적하듯이 유토피아적 열망이 소진하면서 "대안이 없다(TINA: There Is No Alternative)"는 분위기의 팽배가 비판이론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비판이론이 대안적 사회제도에 대한 이론화를 경시한 것도 한몫 한 셈이다. 더 중요한 점은 이 이론들의 한국적 맥락일 것이다.
"서구이론과 한국사회의 거리 조준에 실패했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의미가 크고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상의 검토에서 한국적 맥락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 아쉽다. 발전된 검토와 정리가 아니라, 사상가의 소개에 그친 느낌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김호기 엮음. 한울 발행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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