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정보기술(IT) 산업에 대해 궁금한 게 있다면 주요 도시마다 어김없이 자리잡은 소프트 웨어 기술단지(STP)를 방문하면 명쾌해 진다. 인도 정부가 1991년 방갈로르에 시범 설치한 이후 그 수가 12개로 늘어난 STP는 인도 IT 산업의 '전위대'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STP는 소프트 웨어를 비롯한 IT 기업 활동과 관련된 모든 사항을 관장한다. 신생 기업에 저리의 자금과 기술을 제공하는 인큐베이터 활동 뿐만 아니라 시장조사 등 각종 서비스 제공, 전세계를 잇는 정보 고속도로망 등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게 활동한다.
방갈로르가 '인도의 실리콘 밸리'로 각광 받은 것도 일찌감치 STP를 설립, 적극적으로 IT 육성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방갈로르가 속한 카르나타카 주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무려 500개 이상의 공ㆍ사립 IT 전문학교 설립을 지원하고 하이테크 산업 유치에 총력을 기울였다.
방갈로르 STP의 B.V.나이두(37) 이사장은 "STP는 기업과 국민에게 이익을 주기 위한 기관이지 결코 관리하기 위한 곳이 아니다" 라면서 "우리는 언제든 당신의 파트너가 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STP-방갈로르가 IT 기업에 제공하는 특혜는 파격 그 자체이다. 소프트 웨어 업체에 대해서는 최저 수입관세 및 소득세 면제 등 각종 세제상 특혜를 주고, 소프트웨어 수출을 위한 통신시설도 무료로 제공한다.
STP 중앙통제 센터에서는 쉴 새 없이 자체 개발한 '소프트넷'을 통해 세계 각지의 IT 관련 정보를 기업들에게 보내고 있다.
외국 업체에 대해서도 소프트 웨어 개발용 수입장비의 관세를 감면하는 등 혜택을 주긴 마찬가지이다. 외국인의 IT 관련 정부 승인 및 통관ㆍ수출 신고 및 인허가도 STP로 일원화됐다.
과거 같으면 창업이나 투자 시, 심지어 철수하기 위해 수십 곳의 관청을 쫓아다녀야 했으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STP의 이 같은 육성책에 고무돼 지난 해 1~6월 인도의 소프트웨어 관련 외국직접 투자액은 390억 달러로 1999년 같은 기간 보다 무려 13배나 증가했다. 동시에 국내 IT산업이 폭발적으로 발전하자 외국으로 빠져나갔던 우수 인력들의 국내 회귀현상도 활발해졌다.
나이두 이사장은 "1980년대에는 오로지 외국 진출이 목표였던 기술자들이 최근에는 1~2년간 미국회사에서 근무한 뒤 고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사업체를 차리거나 투자가로 변신하는 경향이 자리잡고 있다"면서 "사람 장사 만으로는 제대로 수익을 낼 수 없다"고 말했다.
STP를 중심으로 국내 IT산업이 체계적으로 정착되자 해외에서도 인력 유치 대신 아웃소싱으로 전환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삼성소프트웨어 인디아(SISO)의 김규출(金圭出) 법인장은 "방갈로르의 IT 환경이 아주 안정돼 있기 때문에 아예 직접 투자하거나 연구개발(R&D)을 아웃소싱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면서 "대부분의 다국적 기업들이 인도를 소프트웨어 개발 사령부로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STP의 IT 육성책은 STP의 도움으로 성장한 사기업들의 자발적인 국제기술단지(ITP) 건설로 이어졌다. 인도 최대의 타타그룹 등이 싱가포르 기업들과 함께 방갈로르에 설립한 ITP는 웬만한 선진국 보다 우수한 시설을 갖추고 있는 '비즈니스 유토피아'이다.
수디르 셰티 ITP 부사장은 "이곳은 오로지 외국 기업인들에게 안정적인 기업과 가정 생활을 제공하기 위해 건설됐다"면서 "현재 100개 이상의 기업이 입주했다"고 말했다.
인도 정부는 향후 STP를 전국에 30개 이상을 건설, 전국을 거미줄처럼 네트워크화 할 계획이다. 풍부한 인적자원을 효과적으로 배치하고 분배하는 한편, 이를 다시 외국과 연결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나이두 이사장은 "우리는 지금 오랫동안 지속될 거대한 물결의 첨단에 서 있다"면서 "STP가 살아있는 한 최소한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만큼은 '팬 인디아(Pan India)' 시대가 계속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IT인도의 저력은 '교육'에서 나온다
수천년간 잠들었던 거대 '코끼리 왕국' 인도가 'IT 슈퍼파워'가 된 것은 무엇보다 교육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 때문이다.
인도는 매년 3,000여 교육기관을 통해 6만여 명의 IT 엔지니어들을 배출한다. 배출 인력의 수 보다 주목되는 것은 '구슬을 보물로 꿰어내는' 대학들의 능력이다.
방갈로르 인도 정보기술대(IIIT-B)의 R. T.쿠마르 교수는 "수천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학한 학생들, 190학점을 관통하는 엄격한 학사관리, 교수들의 희생정신, 철저하게 기업의 필요에 맞추는 교육과정이 경쟁력의 원천"이라면서 "우리에겐 세계 최고의 IT기업은 없지만 교육기관은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IIT(인도공대), IIS(인도과학원), IIIT 등은 졸업만 하면 세계 유명기업의 스카우트 1호가 된다. 미국 경제주간지 포천에 따르면 세계 1,000대 기업에서 203개 업체가 인도의 소프트웨어 인력을 활용하고 있다.
여기에다 단순한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논리'를 가르칠 줄 아는 수천개의 사립 IT 전문학교들이 있다. '손텍 디지털'이라는 방갈로르의 IT 학원에서 만난 K.
데시지트 교수는 "우리는 비록 486 컴퓨터를 사용하지만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단순한 컴퓨터 지식이 아니라 원리를 가르친다"고 자랑했다.
인도의 대표적인 IT 전문학원으로 마이크로 소프트가 신제품을 개발하면 가장 먼저 시범 운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압텍'의 경우 지난해 40개국 2,000개의 센터를 통해 4만 명의 졸업생을 배출, 이 가운데 25%를 외국계 기업에 취업시켰다.
■인포시스 공동창업자 고팔라크리쉬난 인터뷰
소프트웨어 업체인 인포시스 테크놀러지는 인도 젊은이들에겐 신화 그 자체이다. 1999년 인도기업으로는 사상 최초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 1999년 회계연도(1999년4월~지난해 3월) 2억340만 달러 매출에 6,130만 달러 순익 등 인포시스의 위력은 대단하다.
10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컴퓨터와 씨름 중이던 S. 고팔라크리쉬난(50) 공동창업자 겸 부사장은 "직원들에게 적절한 동기를 부여한 게 성공의 비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인도 기업 중 최초로 스톡옵션을 제공한 이 회사 직원 5,000여명 가운데 400명이 이미 백만장자의 반열에 올라있다. 1인당 국민소득(GDP)이 450달러에 불과한 인도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임이 분명하다.
사옥 안에서 자유롭게 골프를 치고 사우나와 테니스, 헬스 등 레저활동을 하는 직원들을 보면 마치 대단위 위락단지를 겸비한 캠퍼스에 온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이에 대해 고팔라크리쉬난 부사장은 "우리는 직원들의 행복 보장을 기업의 중요한 존재 가치로 간주한다"며 "기술자들이 만족해야 생산이 오른다"고 강조했다.
그의 경영철학은 1981년 단돈 250달러로 회사를 만들 때 창업자 6명의 다짐이기도 했다.
그는 "당시 우리는 인도를 구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기업을 세웠다"면서 "세월이 흐르면서 '정의'의 의미가 바뀌긴 했지만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신념 만은 변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인포시스는 주가상승으로 인한 이익을 장학금, 빈민단체 기부 등으로 대거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인포시스의 또 다른 특징은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품질 경영'이다. 하이데라바드 공대 출신의 엔지니어인 고팔라크리쉬난 부사장은 "주식투자 등 회사 경영 상황을 모두 공개, 기업문화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꾸준한 연구개발(R&D)로 기술력을 배양하는 것은 성장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우리는 '최고수준의 인력을 통해 최고수준의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제공하는 글로벌 기업'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면서 "인도의 많은 벤처 기업가들에게 영원히 부끄럽지 않는 기업으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마이크로 소프트와 전면적인 전략 제휴관계를 맺고 시스코 시스템스의 차세대 연구개발센터 건설을 총괄할 정도로 세계적 위상을 높이고 있는 인포시스의 성공비법은 바로 덩치가 커질수록 고개를 숙이는 '겸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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