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2일자 최재천교수 칼럼 '자연±세상의 '생명의 시작, 그 공허한 논란'에 대해 전방욱 강릉대 생물학과 교수가 반론문을 보내왔다. 발전적 생명윤리학 논쟁을 위해 글의 요지를 게재한다. 편집자주최재천 교수는 학문적으로나, 일반인들에게 과학을 홍보한다는 점에서 여러가지 공헌을 해왔으며 그 점에서는 동료로서 존경해마지 않는다.
그러나 최교수가 이 칼럼에서 펼치고 있는 주장의 줄거리는 생명윤리학적으로 우려할만한 수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교수는 "유전자가 생명현상을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주고 그 몸이 '의식'을 얻어야 비로소 하나의 생명체가 탄생한다고 봐야 한다.
인간은 특별히 완전하지 않은 신경계를 가지고 태어나는 동물이다. 신경계가 자의식을 확립하여 하나의 완벽한 '영혼'으로 거듭나는 시각은 어머니의 몸을 빠져 나와서도 한참이 지난 후"라고 주장했다.
생명체는 유전자를 담고 있는 매개체에 불과하다는 것인데 '의식'이라든지 '영혼'이라는 것도 그의 주장에 따르면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DNA라는 유전정보의 발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생물이 수정란의 상태에 있든 또는 수정후 일정한 발달단계에 도달한 상태에 있든 그것이 담고있는 유전정보는 동일하다.
하지만 그는 수정란을 생명체로 볼 수는 없으며 신경계가 자의식을 가져야 생명체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동일한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생명체와 의식을 가진 존재, 생물종으로서의 인간과 인격체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인가.
수정란에서는 두 배우자가 만들어낸 각각의 생식세포가 융합해 독특한 재조합 DNA가 만들어진다. 이 독특성은 수정란을 포함하는 모든 생물체의 고유한 가치를 결정한다.
인간 DNA의 독특성을 왜 유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어리석은 질문일 수밖에 없다. 인간 DNA의 독특성을 부인하는 것은 생물로서의 인간의 존재를 부인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배아를 조작할 때와 배아복제 실험을 하고 난 다음에는 이처럼 개체마다 고유한 인간 DNA를 담고 있는 배아는 무의미해질 수 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최 교수의 논리는 더욱 커다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배아를 인위적으로 복제할 수 있다는 시점의 기준은 배아를 마음대로 폐기할 수도 있는 시점의 기준도 되기 때문이다.
또 자의식을 생명의 기준으로 삼게되면 아직 자의식을 갖지 못하는 배아는 물론이거니와 선천적으로 무뇌아로 태어난 수많은 어린이들, 제대로 된 자의식을 갖지 못하는 정신병환자들, 치매 노인의 경우 보호받을 준거가 상실된다.
최 교수가 결론으로 제시한 인간의 호기심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 수밖에 없다든가, 혹은 다른 나라가 생명과학의 모든 정보를 선취하기 전에 우리 모두 (배아)연구에 참여해야 한다든가 하는 것도 윤리적으로 당위성이 있는 주장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그가 공허하다고 지적한 생명체의 시작을 논하는 것이 훨씬 더 문제를 윤리적으로 생각해나가는 방향과 가깝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적어도 생물관련 기초학과나 응용분야의 학과에서는 생명윤리학을 필수과목으로 조속히 지정하여 한번쯤 생물학자들이 연구하는 분야가 어떤 윤리적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전방욱 강릉대 생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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