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쇼와 카탈로그를 자주 접하다 보면 '좌절'할 때가 있습니다. "모델은 왜 늘 예쁘고 날씬하지"라는 부러움입니다.'다리가 기니까 9부 바지가 잘 어울리는구나'하는 관심은 '키 작은 사람이 이 코트를 입으면 가관이겠군'하는 상심으로 바뀌지요. 사실 "마담 55사이즈는 영 캐주얼의 77"이란 말처럼 브랜드마다 사이즈 격차가 크지만 패션쇼나 화보촬영용 샘플은 한결같이 꼭 끼는 55 뿐입니다. 모델들도 모두 천편일률 55지요.
그러나 늘 예쁘고 날씬한 모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상품 개발 단계에서 디자이너가 옷의 느낌을 보기 위해 모델에 입혀보는 때가 있습니다. 그냥 보는 옷과 입어본 옷은 느낌이 크게 달라 주문량을 좌우하기도 하죠.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피팅(fitting)모델입니다.
피팅모델은 전문모델처럼 현실과 떨어져선 안 됩니다. 브랜드 타깃 연령의 평균 체형을 가져야 합니다. 마담 브랜드의 피팅모델은 여지없이 허리 굵은 아줌마, 중년 대상의 신사 정장이라면 배 나온 아저씨입니다.
누가 피팅모델을 할까요? 모델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한 주부, 새 옷들을 입어보는 걸 즐기는 사람, 패션을 공부하는 이들이 자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원한다고 다 되나요? 이 사람 저 사람 둘러서서 ?어보고 지적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면 피팅모델은 못 합니다. 가끔 포즈도 잘 취하고, 옷에 대한 느낌을 잘 이야기해 프로처럼 대우받는 피팅모델도 있습니다.
피팅모델이 브랜드의 실제 소비자층과 일치하면 판매율에도 일조합니다. 그래서 간혹 유흥업소의 여종업원, 조직폭력배 등 특정계층이 선호하는 브랜드는 그들 중에서 피팅모델을 선발하기도 한답니다.
또 요즘은 패션기업들이 자기 직원을 쓰는 일이 보편적입니다. 20대 여성복 브랜드의 경우 디자이너를 새로 뽑을 때 아예 55사이즈인 사람을 뽑기까지 합니다.
'막내 디자이너'는 6개월~1년 정도 피팅모델로 일을 배우다가 후배가 들어오면 비로소 디자인을 시작하는 겁니다.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간단한 심부름을 하는 피팅모델을 따로 뽑아 상주토록 하는 기업이 많았지만 IMF 이후 디자이너가 겸하도록 바뀌었죠.
몸매가 안 되면 디자이너로 취직도 힘든, 기가 막힌 현실입니다.
아동복은 어떻구요. 쑥쑥 자라는 아이들은 피팅모델을 정해놓을 수가 없어 시즌마다 새 모델을 찾습니다. 아이들을 눈여겨 보는 업체 관계자들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곤욕을 당한 일도 있답니다.
그래서 대부분 주변 학교, 유치원 등에서 교사와 협의해 치수를 재 보고 모델로 뽑습니다. 사례는 대부분 옷입니다.
속옷 피팅모델은 가장 보수가 많고, 전문모델이 맡는 일도 많습니다. 브래지어는 우리나라 여성의 표준 사이즈인 75A, 80A인 사람이 피팅을 하고, 남성 속옷 피팅모델은 역시 직원에게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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