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력의 장타자 존 댈리는 프로전향 5년만에 1991년 메이저대회인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많은 PGA 골퍼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부상했다.드라이버샷의 비거리가 300야드가 넘어 파5 홀의 투온은 기본이고 파4홀의 원온도 어렵지 않아 모두들 그와 한 조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95년 브리티시 오픈에서 우승한 뒤 존 댈리에 대한 공포는 극에 달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 PGA골퍼 중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자기통제를 못해 리듬을 잃고 추락하는 모습을 자주 본 탓이다.
아마시절부터 골프천재로서 명성을 날린 타이거 우즈에 대한 PGA 골퍼들의 두려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프로전향 1년만인 97년 4대 메이저대회의 하나인 마스터스를 석권하고 지난해에는 US오픈, PGA챔피언십, 브리티시 오픈 등 3개 메이저대회를 비롯해 10개 대회를 휩쓸자 타이거 우즈는 공포 그 자체로 변했다.
타이거 우즈가 프로로 전향하기 전 천하를 호령하던 선수들마저 우즈에 주눅이 들어 2위 경쟁에 매달려야 했다.
타이거 우즈 공포가 올해도 이어질 것인가. 5개 대회를 치른 올 PGA에서 타이거 우즈를 비롯한 '고수(高手)'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우즈는 물론 데이비드 듀발, 필 미켈슨, 어니 엘스, 콜린 몽고메리, 리 웨스트우드 등 톱랭커들은 우승은 커녕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대신 고수들의 그늘에 가려 있던 중견골퍼나 신인들이 우승을 따내며 선전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막을 내린 피닉스오픈에서 우즈는 52라운드만에 오버파를 쳤고 엘스와 듀발은 컷오프 탈락하는 가운데 캘커베키아가 최저타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이같은 무명들의 반란은 고수들에 대한 공포가 퇴색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고수공포에 대한 면역이 생겼다는 뜻이다. 우즈나 듀발, 엘스, 미켈슨 등이 훌륭한 선수임에 틀림없지만 언제나 공포의 대상으로만 남을 수 없는가 보다.
올해 LPGA 첫 번째 대회와 세 번째 대회에서 우승한 박세리나 박지은의 재기도 캐리 웹이나 아니카 소렌스탐, 줄리 잉스터 등 고수에 대한 공포에서 탈출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박지은이 마지막 라운드에서 '여자 타이거 우즈'로 불릴만큼 기량과 배짱, 경험을 갖춘 웹을 따돌릴 수 있었던 것은 고수들에 대한 면역이 생겼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올해 한국 여자선수들의 선전이 기대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아마추어 골퍼들도 고수공포증에 시달린다. 고수하고 라운드하면 괜히 주눅이 들어 제 실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쩔쩔 맨다. 고수와 자주 붙어 면역성을 키우고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는 요령을 터득하면 고수공포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고수공포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골프의 묘미는 깊어진다. 잘 나가던 고수도 어딘가에서 추락하듯 헤매기만 하던 하수도 펄펄 날 때가 있다.
/편집국 부국장=방민준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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