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몽골리안 문명을 영상으로 복원시키고, 유럽ㆍ중국 위주로 된 인류사에 문제를 제기한다. KBS가 야심을 갖고 도전한 2001년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몽골리안 루트'(8부작. 연출 진기웅ㆍ손현철, 1TV 매주 화요일 밤 10시)가 6일 첫 모습을 드러낸다.이 프로그램에 투자된 시간과 물량은 '대형 다큐멘터리'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제작기간만 3년 6개월이 걸렸고 10억원 이상의 제작비를 들여 20여개국에서 취재했다.
선사 인류의 지구확산 과정을 문명사적 관점에서 다루었지만, '몽골리안 루트'라는 제목에서 연상되는 다른 선입견(몽골 제국의 역사, 혹은 몽골의 풍물 소개 프로그램)을 없애고 프로그램의 확실한 정체성을 알리기 위해 30일 예비프로그램 '이것이 몽골리안 루트다'를 방송하기도 했다.
'몽골리안 루트'는 사실 10년 동안 두 번이나 유산되었던 작품이다. 1990년대 초반 몽고반점, 넓적한 얼굴 등 우리 민족과 유사한 인류집단이 유라시아의 광대한 초원에서 남아메리카 끝까지 살고 있다는 사실에 천착하여 프로그램을 구상했으나 너무도 광대한 스케일이 부담스러워 아이디어에 그쳤다. 93년 제작진이 구성되고 15편의 시나리오까지 만들어졌지만 제작비 문제로 또한번 좌절되었다.
애초 몽골리안 루트를 따라 온 한민족의 정체성으로 초점을 맞추었으나 1998년 제작하면서 관점을 세계사적으로 확대했다.
8편중 4편까지는 아프리카에서 시작한 인류의 조상이 아시아 대륙의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면서 몽골리안이 되는 과정을 그렸다. 그리고 나머지 편에서는 유목민에서 세계 제국의 주인이 되는 몽골리안의 역동적인 정복사를 다룬다.
30일 시사회에서 선보인 1편은 고아시아계와 퉁구스계 민족의 수렵 민속, 메스보다 더 날카로운 세석기를 만드는 과정의 재현 등을 생생하게 보여 주었지만 너무 잦은 컴퓨터그래픽, 유기성이 떨어지는 자료화면의 사용으로 다소 산만한 느낌을 준다.
마치 '풍물기행'과 '역사스페셜'같은 재현 다큐멘터리를 왔다갔다하는 느낌이다. 이에 대해 제작진은 "'실크로드'와는 달리 '몽골리안 루트'는 정체성 자체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소수 민족의 생생한 생활 모습을 많이 확보하기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또한 '한민족의 발자취'를 인류사와 조화시키려다 보니 시청자에게 '바로 이것'이라는 선명한 메시지와 감흥을 전달하기는 힘들다.
편협한 민족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방향을 세계사적으로 확대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방향성의 충돌은 제작진이 가장 많이 고민했던 문제였다.
'몽골리안 루트'가 과연 문명사적 관점을 바꿀 역작이 될지, 단순한 역사의 나열에 그칠지는 시청자의 판단과 관련 학계의 평가 등 사회적 반향에 달려 있을 것이다.
양은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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