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아티스트들은 식단메뉴와 생수 상표까지 지정한다. 그런데 개런티를 지불하는 우리는 그들이 어떤 악기를 들고 올 것인지, 노래를 어떻게 부를 것인지 아무 것도 물을 수 없는 참담한 실정이다"28일 잠실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보이즈 투 멘' 내한 공연을 기획한 라이브플러스 정길배 대표의 하소연이다.
멤버중 한명이 허리 부상을 이유로 입국하지 않았고, 90분 라이브로 연주 대신 60분간 반주 테이프에 맞춰 노래했다. 항의가 빗발쳤다.
라이브플러스측이 "유료입장객 전원에게 100% 환불하겠다" 고 밝혀 사태는 일단 수습 국면으로 들어갔다.
'공연의 질(質)' 을 인정하고, 기획자가 관람료를 되돌려 주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지난 10월 항의가 잇달았던 '리키 마틴 내한공연' 의 관람객 일부가 참여연대의 조정을 통해 기획사로부터 뮤직비디오와 CD, 차기 공연시 무료 초청권 제공 등의 중재안을 받아낸 것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이번 공연의 파행은 '기획자가 아니라 흥행업자가 대부분' 인 우리 공연 기획업계의 치부를 드러낸 계기였다.
라이브플러스측은 20만 달러(방송판권 5만 달러 포함)의 공연 개런티를 지불하는 계약을 맺으면서도 '보이즈 투 멘'에게 미군캠프 3곳의 위문 공연 약속이 미리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시아지역 공연 매니지먼트사가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국제시세대로 개런티를 챙긴 것이다. 3, 4개월전 허리를 다친 멤버의 참석여부도 공연 이틀전에야 "못온다" 고만 통보했다.
외국아티스트들은 통상 음반을 내는 음반사. 메인 매니지먼트사, 공연스케줄을 조정하는 부킹 에이전시 세 곳과 관계를 맺고 있다.
때문에 단기간내 이익을 챙기려는 부킹 에이전시의 '파워'를 알지 못한 채 거액을 주고 공연을 성사시켜도 국내에 와서 이런 저런 요구를 하기 어렵다.
수년간 내한한 외국 아티스트들의 공연이 부실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미국 부킹 에이전시들은 과당 경쟁으로 몇 배씩 개런티를 부풀리는 우리 기획사들의 행태를 잘 알고 있다.
IMF로 주요 공연업체가 통폐합 됨으로써 다소 주춤하긴 했지만 대신 "표만 팔아 수익만 챙기면 그만" 이라는 '하루살이' 기획사들은 생겨났다 사라지고 있다.
공연기획자 인재진씨는 "짧아도 6개월~ 1년 전 계약을 마치고 음향 조명 등 기술적 문제를 체크할 수 있는 전문 기술진을 갖추지 않으면 좋은 기획을 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전문가 부족, 얄팍한 즉흥 기획이 사라지지 않으면 앞으로도 외국 아티스트에게 수모를 당하지 않기는 어려울 것 같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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