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석들이 있었다.전북 전주시 완산구 다가공원. 수백 년 전 이 지방을 다스리거나 거쳐갔던 지방관 혹은 순찰사들의 공덕비부터 수십년 전까지 이 지역에 살았던 인사들의 불망비까지, 30여 기는 되어보이는 크고 작은 갖가지 형태의 비석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죽음'은 도심 한복판에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버텨 서 있었다.
남진우(41) 시인도 어떤 연유로 비석들이 이곳에 한꺼번에 자리잡게 되었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그 주인들의 묘지가 있는 곳도 아닌, 공원 오른편의 야트막한 언덕 발치에 이 죽음의 표지들은 시내를 약간은 내려다보는 자세로 늘어서 있고, 앞으로는 전주천이 흐른다. 남씨는 "이 언덕 위에 가람 이병기 선생의 문학비가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비석들은 그가 어릴 적부터 이곳에 있었다. 남씨가 태어나서 마지막 '학원' 세대로 문학소년 시절을 보낸 고교 졸업 때까지 살았던 전주시 한복판이다.
그의 시세계를 관통하는 한 마디의 주제라 할 수 있을 '죽음'은 이렇게 자신도 잘 기억하지 못했던 그의 유년시절부터 공기처럼 주위에 있었던 셈이다.
'겨울, 대지의 관이 닫힌다/ 서리 내린 길 위를 허기진 개들이 어슬렁거리고/./ 죽은 자의 눈꺼풀을 쓸어내리며 다가오는 빙하기의 어둠/ 흰 눈송이들이 몰려와 내 의식의 빈터에 쌓이는/ 밤/ 나는 유리창 옆에 서서/ 어둠 저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를 지켜본다'(
부분)
'기다려라 기다려/ 내 시선이 머무는 곳 어디서나 달팽이가 웅크리고 있으니/ 죽음의 습기를 내뿜는 저들이/ 담장 속으로 스며 사라지기까지/ 나는 잠자코 지켜볼 뿐'(
부분)
남씨의 시에 따르면 시인은 '어둠 저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 혹은 '죽음의 습기를 내뿜는 저들'을 지켜보는 자이다.
'그'와 '달팽이'는 죽음이다. 아예 죽음이 표제로 드러나 있는 남씨의 두번째 시집 '죽은 자를 위한 기도'도 그렇지만, 그의 세번째 시집 '타오르는 책'도 죽음을 지켜본 신비로운 언어로 가득 차 있다. 남씨는 죽음을 지켜볼뿐만 아니라 기억하려 하고 또 불러들인다.
왜 죽음일까. 그것은 수수께끼 같은 삶의 의미를 해독하려는 시인의 몸짓일 것이다. 죽음을 통해 거꾸로 삶을 보는 방법이다.
그는 "서른셋을 전후한 시절,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극히 황폐하고 아픈 나날을 통과했다. 시를 통해 죽음의 예행연습을 했던 셈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남씨가 말하는 죽음은 이런 개인적 죽음의 응시만은 아니다.
90년대 이후 내내 시가 죽고 문학이 죽었다는 시절을 통과해야 하는 시인의 고민 때문이기도 하다. "적어도 이 시대에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시의 죽음이라는 주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에 대한 성찰 없이 씌어지는 시가 의미 있을 리 없다. 시의 죽음이야말로 시의 새로운 탄생을 가능케 하는 질료일 것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타오르는 책'은 책을 매개로 자아와 죽음을 응시한 그의 존재론적 시의 한 절정이다. 남씨 뿐만 아니라 그의 세대의 많은 젊은이들은 '펼치는 순간 불이 붙는' 책을 읽으며 '놀라움으로 가득 찬 불놀이'를 벌였다.
세계는 책이고 책은 세계다. 그리고 '불로 이글거리는 머리를 이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불과 함께 몰락하는 장엄한 일생'을 꿈꿨다.
그러나 '이제 그 불은 어디에도 없다.'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읽어도' 세상에는 '타오르지 않는 책만 차곡차곡 쌓여'갈 뿐이다.
시가 다의적 해석을 허용한다면 이 시구들은 모든 인문학적 탐구를 향한 열정의 불은 이제 꺼졌다는 선언일 수도 있으며, 이글거리는 불처럼 타오르던 역사적ㆍ현실적 이상들이 사라졌다는 시대인식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그 근저에는 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문학현장의 젊은 평론가로 이념의 기치가 사라진 90년대 한국문학판을 헤엄쳐 나왔던 남씨의 회한이 스며있다.
'모든 시인은 단 한 편의 시를 꿈꾼다. 그 한 편으로 자신의 생과 이 세계에 완벽하게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언어의 구조물을 꿈꾼다.
일순간의 섬광과 함께 텍스트의 안과 밖을 동시에 폭파시킬 수 있는 강력한 불꽃의 언어를 희구한다.' 그는 자신의 두번째 평론집 '바벨탑의 언어' 서두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 불가능한 한 편의 시, 완벽한 책, 혹은 절대의 언어를 찾아나서는 과정은 불가능에 이르는 도정이고 따라서 그 자체가 지긋지긋한 죽음의 과정일 수밖에 없다. 남씨의 시는 그 죽음의 도정의 기록이다.
비석들의 뒤편 다가공원에는 다가정(多佳亭) 혹은 천양정(穿楊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활터가 있다.
"지금은 전주가 대한민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도시로 변해버렸지만, 내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는 이른 아침 이 활터에서 시위를 떠난 화살이 상쾌한 대기를 가르고 날아가 과녁에 꽂힐 때 '딱' 하고 나던 소리가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고 남씨는 말했다. 야산이던 활터 뒤편에는 고층 아파트들이 빽빽이 들어섰다.
어렵사리 남씨의 기억의 지층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죽음의 존재를 확인시켜 준 비석들을 뒤로 하고 전주에 사는 시인 안도현(40)씨를 만났다. 그는 경북이 고향인 사람이다.
전주의 남진우, 대구의 안도현, 부산의 이산하씨 등 지금은 중견이 된 시인들은 고교 시절 '학원' 세대로 필명을 날렸던 문학소년들이었다.
'학원'은 이제 소수의 문학청년들에게 전설이 되어버렸다. "도대체 남진우씨의 시로 어떻게 전주로 문학기행을 올 작정을 했느냐. 어디 납골당이나 도서관을 찾아가야지."라고 안씨는 우스개 삼아 말했다.
안씨와 함께 다시 찾아간 곳은 역시 도심에 있는 연지(蓮池)라는 못이다. 남씨의 첫 시집 '깊은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에는 이곳에서 씌어진 시가 보인다.
'.천천히 나는 연꽃 둘레를 돌기 시작했다// 한 바퀴 돌았을 때/ 달이 지고 둥근 해가 떠올랐다/ 나는 연꽃 위에 엎드려 잠들었다/ 지난밤 나와 함께 연꽃을 돌던 은하의/ 별들도 다 내 몸 속으로 들어와/ 같이 잠들었다'(
부분)
이 시에서도 죽음은 엄연하다. 그는 연잎 한 바퀴를 돌며 한 세상이 저물고 다시 솟는 것을 노래했다. 은하의 별들을 몸 속에 담으면서 그는 다시 죽음을 체험한다.
제법 너른 못에 연이 가득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지만, 꽃도 잎도 다 누렇게 삭아버리고 대궁만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마치 가을 들판처럼 황금색으로 보이는 겨울 못이었다. 남씨는 수면 아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아래 까마득히 그가 꿈꾸는 '단 한 편의 시'가 있고, 계절에 스러진 연잎처럼 그 한 편의 시에 다다르기 위해 씌어질 실패한 언어의 죽어간 잔해를 미리 보는 듯했다.
▽타오르는 책
그 옛날 난 타오르는 책을 읽었네
펼치는 순간 불이 붙어 읽어나가는 동안
재가 되어버리는 책을
행간을 따라 번져가는 불이 먹어치우는 글자들
내 눈길이 닿을 때마다 말들은 불길 속에서 곤두서고
갈기를 휘날리며 사라지곤 했네 검게 그을려
지워지는 문장 뒤로 다시 문장이 이어지고
다 읽고 나면 두 손엔
한 움큼의 재만 남을 뿐
놀라움으로 가득 찬 불놀이가 끝나고 나면
나는 불로 이글거리는 머리를 이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곤 했네
그 옛날 내가 읽은 모든 것은 불이었고
그 불 속에서 난 꿈꾸었네 불과 함께 타오르다 불과 함께
몰락하는 장엄한 일생을
이제 그 불은 어디에도 없지
단단한 표정의 책들이 반질반질한 표지를 자랑하며
내게 차가운 말만 건넨다네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읽어도 내 곁엔
태울 수 없어 타오르지 않는 책만 차곡차곡 쌓여가네
식어버린 죽은 말들로 가득 찬 감옥에 갇혀
나 잃어버린 불을 꿈꾸네
정오
새가 사나워지는 것은
내 피가 점점 뜨거워지기 때문이다
새가
하늘 높이 솟아오를수록
내 피는 조금씩 말라간다 이윽고
새가 내 시선을 끊어버린 채
허공 깊숙이 증발해버리면
나는 내 피의 넝쿨 가득히
환한 죽음을 꽃피운다
약력
▦ 1960년 전북 전주 출생 ▦ 중앙대 문예창작과ㆍ대학원 졸업 ▦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시),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평론) 당선
▦ 시집 '깊은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 '죽은 자를 위한 기도' '타오르는 책', 평론집 '바벨탑의 언어' '신성한 숲' '숲으로 된 성벽' ▦ 소천비평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동서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
위, 덕진공원 내 연지에 선 남진우씨. 아래, 전주시 완산구 다가공원 앞 비석거리.이곳에서 시인은 '죽음'을 보았다
전주=하종오 기자
사진 홍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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