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령 106세 허언년할머니북측 가족 생존확인 신청자 중 최고령인 허언년(106ㆍ경기 화성군 송산면) 할머니는 30일 북에 홀로 두고 온 외아들 윤창섭(70)씨의 생존소식에 한동안 혼절했다.
"어머니, 오빠 혼수로 준비했던 명주, 광목을 이젠 쓰실 수 있겠네요." 막내딸 정숙(60)씨가 굵은 눈물을 쏟는 어머니를 일으켜 안으며 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한적십자사에서 당초 창섭씨가 사망했다고 잘못 알려와 하룻 밤새 지옥과 천당을 오고간 느낌이었다.
38선 너머 강원 철원군 임목면에 살던 허 할머니가 아들과 생이별한 것은 1950년 10월.
"면사무소에서 찾는다"며 나간 아들의 소식이 끊긴 뒤, 북진하는 국군과 퇴각하는 인민군 사이의 치열한 전투 와중에서 남편, 세딸과 함께 황급하게 화성 친정으로 피한 게 마지막이 됐다.
이듬해 남편이 먼저 세상을 뜬 뒤, 허 할머니는 소작일 등을 마다않고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면서도 아들의 혼수를 따로 마련해 두는 등 재회의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딸 정숙씨는 "어머니가 귀가 어둡긴 하지만 연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하시다"며 "오빠를 보기 전에는 눈을 감을 수 없다고 늘 말씀하시더니 반즘은 한을 푸신 것 같다"고 말했다. 허 할머니는 "나 몰래 생사확인 신청을 한 정숙이가 진짜 효녀"라며 딸을 얼싸 안았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반공포로 출신 허병식씨 아내,두딸 생존확인
"남편, 아버지없이 고생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프고, 또 한편 설레기도 하고. 도대체 갈피를 못잡겠어."
한국전 때 인민군으로 포로가 됐다가 1953년 휴전협정 체결과 함께 남쪽을 선택한 반공포로 출신 허병식(84ㆍ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씨. 그는 대한적십자사가 30일 공개한 조선적십자회의 생사ㆍ주소 확인 회보서를 통해 51년만에 북의 아내 김계량(79)씨와 두 딸의 생존을 확인하고는 기쁨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착잡한 상념에 빠져 들었다.
"가족들 모르게 3∼4년 전 구청에 생사확인 신청을 했지만 그동안 아무 연락이 없어 전쟁통에 다들 죽은 줄 알았지. 지금까지 살아줘서 그저 고마울 따름이야."
남쪽에서 결혼한 아내 조팔년(69)씨가 오히려 "북의 가족과 상봉하는 날이 올 때까지 남편을 잘 입히고 잘 먹여 건강하게 만날 수 있도록 하겠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평북 삭주군 청수면 고향에서 철강소 일을 하던 허씨는 한국전 발발 직후인 50년 8월 인민군의 신체검사 통지를 받고 마을회관에 갔다가 그 길로 강제징집됐다. "그 때 아내가 임신 4개월이었어. 그 아내와 일곱살, 네살짜리 어린 두 딸의 손 한번 못잡아 보고 전쟁터로 끌려간게 평생의 한이 됐지." 그의 눈에는 어느새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허씨는 낙동강 전선에서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동료 4명과 함께 탈출, 국군에 투항해 남쪽에 남았다. 이후 그는 59년 상경해 현재의 부인을 만났고, 손에 익은 철공소를 운영하며 3남1녀를 남부럽지 않게 키워냈다.
"뱃속에 있던 한 놈이 궁금하긴 하지만, 어쨌든 아내와 딸들 모두가 살아있는 것만해도 하늘이 주신 복"이라는 허씨는 "편지도 편지지만, 한번 만나 볼 수는 있을 는지"라며 망연한 눈길을 허공에 던졌다.
김태훈기자
oneway@hk.co.kr
■92세 최우성할머니 딸생존확인
30일 인천 부평구 산곡동 보각사. 최우성(92) 할머니는 북에 두고온 남편 박학제씨가 1955년 숨졌다는 소식과, 맏딸 박순옥(62)씨가 생존해 있다는 소식을 함께 전해듣고는 눈을 감은채 말없이 염주를 굴렸다.
보각사는 최 할머니가 지어 희사한 절. 할머니는 여기에 기거하며 6년을 하루같이 남편과 딸의 안녕을 기원해 왔다. 박달나무를 깎아만든 염주는 그동안 닳고 닳아 유리알처럼 변했다.
평양에서 호랑이가죽, 양털 등을 취급하는 거상이었던 최 할머니는 1951년 1ㆍ4후퇴 때 남편과 딸을 잃었다.
대동강 다리가 끊긴다는 급박한 소식에 친척집에 간 남편과, 큰 아버지 병구완을 하던 맏딸 순옥씨를 남긴 채 이불 몇채를 이고 나머지 5남매와 함께 쪽배에 올랐던 것. "남편에겐 '남한에서 수소문해 다시 만나자'는 편지를 남겼지만 순옥이한테는 그마저도 못했어."
휴전 후 삯바느질부터 시작해 서울 동대문시장의 포목점 주인으로까지 성공, 적지 않은 재산을 모은 최 할머니는 6년전 전 재산을 털어 절을 지었다.
최 할머니는 "순옥이가 잘 살고 있다니 이제 마음이 놓인다"면서도, 남편이 벌써 오래전 세상을 떴다는 소식에 못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죽기 전에 그저 우리 딸 얼굴을 한번만이라도 봤으면.."합장한 최 할머니의 감은 눈 사이로 굵은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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