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모(33ㆍ서울 강남구 도곡동)씨는 설 연휴때 강원도 모 스키장에서 큰 봉변을 당했다. "슬로프를 내려오다 뭔가 심하게 부딪치는 충격을 받고 넘어졌어요.정신을 차렸을 때 20대 청년이 입에서 술냄새를 풍기며 사과하는데 제대로 몸도 못 가누더군요. 맨 정신에도 위험한 데 음주스키라니 정신나간 사람들 아닙니까." 최씨는 온몸에 타박상을 입고 지금껏 병원 치료를 계속하고 있다.
◆ 활개치는 음주스키어
완전히 대중 레포츠가 된 스키. 하지만 최근 스키장마다 술 취한 스키어들이 넘쳐나 심각한 안전위협요소가 되고 있다. 이들은 슬로프를 휘저으며 잦은 충돌사고를 유발하고, 심지어 리프트까지 흔들어대는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찔한 행동을 서슴지 않아 주위사람들을 질리게 만든다.
여대생 조모(24)씨는 "위스키 담은 스테인리스병을 뒷주머니에 꼽고 다니며 홀짝거리는 스키어까지 있다"면서 "이들은 급경사에서도 위험천만한 행동을 해 곁에 가기도 무섭다"고 눈살을 찌푸렸다. 스키강사 김모(35)씨는 "밤새 술마시고 아침에 바로 슬로프로 올라가는 스키어들도 많은데 이들 역시 위험인물"이라고 지적했다.
모 리조트 안전팀장은 "입장객 10% 정도가 음주관련 경고를 받는다"며 "그러나 대부분 얼굴을 감싸 음주판별이 쉽지 않은 만큼 실제로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음주스키를 조장하는 스키장
전국 주요 스키장 대부분이 슬로프 정상의 음식점, 매점 등에서까지 버젓이 술을 팔고 있는 것도 문제. 강원지역 AㆍB 리조트의 경우 맥주는 기본이고 밸런타인 등 고급 외국산 양주까지 구비해놓고 활강을 앞둔 스키어들을 유혹하고 있다.
"슬로프 정상 휴게실에서 왁자하게 술 마시던 스키어들이 불콰해진 얼굴 그대로 급경사를 타고 내려가는 건 보통"이라는 임모(33ㆍ은행원)씨는 "리조트측이 사실상 음주스키를 부추기는 꼴"이라고 못마땅해 했다.
이에 대해 C리조트측은 "술을 찾는 스키어들이 많은게 사실이지만 사고위험을 고려해 저알코올 주류만 판다"고 해명했다.
◆ 음주스키가 오히려 안전하다?
음주 스키어들이 맹신하는 '미신'은 "술 마시면 연골조직이 느슨해져 유사시 신체 충격이 덜하다"는 것. S대 휴학생 금모(27)씨도 "두려움이 싹 가시고 활강 쾌감도 훨씬 좋을 뿐더러 부딪쳐도 덜 다친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형외과 신원형 박사는 "음주와 뼈 상태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며 "술마신 대표선수급 스키어가 다리뼈가 산산이 부서진채 실려온 적도 있다"고 소개했다.
정형외과 전문의 안응선 박사도 "술마실 경우 방향ㆍ속도 감각이 현저히 저하돼 과속하기 쉽고 장애물 대처능력도 크게 떨어진다"면서 "맨몸으로 달리는 음주스키는 음주운전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강 훈기자
hoony@hk.co.kr
박선영기자
philo94@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