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1월30일 인도의 사상가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가 델리에서 반(反)이슬람 극우파 청년의 총탄에 맞아 서거했다. 향년 79세. 인도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간디는 독립된 인도의 분할을 반대하고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의 융화를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이 날 동포의 손에 죽었다. 인도의 20세기 역사는 또다른 두 간디의 암살을 기록하고 있다.인도의 초대 총리 네루의 외동딸 인디라 간디는 총리에 재직 중이던 84년 시크 교도 경호원에게 암살당했고, 그 뒤를 이어 총리가 된 인디라 간디의 장남 라지브 간디도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91년에 암살됐다
시인 타고르로부터 마하트마(위대한 영혼)라는 송사(頌辭)를 받은 50대 이래로 마하트마 간디라고 불린 모한다스 간디는 그의 평화 사상만이 아니라 바로 그 사상의 모범적 실천을 통해서 인도인들만이 아니라 20세기 인류 전체의 커다란 스승이 되었다.
그의 평화 사상과 비폭력 무저항주의는,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믿는 급진적 혁명가들에게는 한가롭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인류가 지향해야 할 궁극적 가치인 것도 사실이다.
런던에 유학해서 법학을 배우고 변호사가 된 20대 청년 간디의 삶이 결정적 전기를 맞은 시기는 소송사건을 의뢰 받아 남아프리카 연방의 더반으로 건너간 1893년이었다.
그는 그 곳에서 백인들에게 박해 받는 인도인들을 보았고, 인종차별 반대운동의 지도자가 되었고, 자신을 뒷날 인류의 위대한 영혼으로 만들 간디주의의 바탕을 다졌다. 그 간디주의의 기반은 아힝사(불살생)였고, 그것의 실천적 지침은 사티아그라하(압박에 대한 투쟁)였다.
감옥을 제집처럼 들락거리면서도 비폭력주의로 일관한 그의 사상은 단순한 반서구주의 안에 가둘 수 없는 커다란 몸피를 지니고 있었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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