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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폴 리쾨르의 '해석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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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폴 리쾨르의 '해석의 갈등'

입력
2001.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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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리쾨르(88)는 20세기 후반의 현상학과 해석학을 대표하는 프랑스 철학자다. 후설 연구로 시작한 그의 학문적 역정은 절충론적 타협을 거부하면서도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 오늘날에는 철학 신학 문학과 여타의 인문학을 넘나들며 그것들을 종합하는 거대한 지적 성채를 이룩했다.국내에서는 그의 '악의 상징'(1960)이 지난 94년에 번역된 것을 시작으로, 세 권으로 된 '시간과 이야기'(1983~85)의 앞 두 권이 재작년과 작년에 번역되었다.

올해 초에 이화여대 양명수 교수의 번역으로 아카넷에서 출간된 '해석의 갈등'(1969)은 그 두 책의 사이에 놓인 저작이다.

'해석의 갈등'에서 리쾨르가 노리는 것은 현상학 방법에 해석학의 문제를 접목시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서론에서 해석학을 현상학 위에 세우는 두 가지 방법 곧 하이데거식의 '이해존재론'이라는 가까운 길과 언어학ㆍ의미론을 거쳐가는 좀더 멀고 힘든 길 가운데 자신은 두번째 길을 택하겠다고 말한다.

'해석의 갈등'이라는 책 제목 자체가 20세기 들어 담론의 분해와 해체를 야기한 다양한 분과 학문들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암시한다.

'해석의 갈등'에 묶인 에세이들은 이 시대 담론의 공간 한 가운데서 발견되는 그런 갈등들을 탐색한다. 예컨대 구조언어학과 의미론, 해석학과 정신분석학 같은 경쟁적 해석들의 갈등을 어떻게 중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모색이 이 책의 목표다.

리쾨르는 언어 문제를 붙잡고 늘어짐으로써 다른 논쟁적 철학 문제들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해석학이 자신과 현상학의 만남을 주선하는 의미론을 중심에 놓을 때, 그것은 인간이라는 의미의 다원적 기능을 해명할 거대한 언어 철학의 탄생에 기여하리라는 것이 저자의 믿음이다.

리쾨르는 의미론의 중심을 이루는 다의적 표현들을 '상징'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해석이란 문자적 의미에서 출발해 거기 숨겨진 모든 수준의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다.

그러니 상징 표현의 영역과 해석활동의 영역은 서로 겹친다. 해석은 복수(複數)의 의미가 있는 곳에 개입해서 의미의 그 복수성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해석의 갈등'에서 해석학이 순차적으로 구조주의, 정신분석학, 현상학, 악의 상징 해석, 종교와 믿음을 만나는 것은 이런 전제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의미론의 도움만으로는 해석학이 철학이 될 수 없다. 의미 형성을 자기 안의 닫힌 체제로 보는 언어학적 분석은 언어를 절대자로 만들고, 자기가 겨냥하는 것 앞에서 사라짐으로써 어떤 존재에 이르기를 바라는 언어 기호의 원래 의도를 무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미론 차원' 다음에는 기호들의 이해와 자아의 이해를 연결하는 '반성 차원'이 와야 한다.

리쾨르의 철학은 풍요롭고 섬세한 만큼 때로 지루하고 위태롭고 바스러질 듯하다. 그러나 그런 지루함과 위태로움 없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캐내기는 힘들 것이다.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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