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광우병(狂牛病) 무풍지대인가?세계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광우병과 증상이 유사한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일명 CJD) 환자가 우리나라에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어 정확한 발병 원인 규명과 함께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나덕렬 교수는 지난 해 4월부터 입원치료 중인 김모(65ㆍ여)씨가 최근 뇌기능이 서서히 파괴되는 CJD 환자로 진단됐다고 밝혔다.
나 교수는 "뇌파검사와 자기공명영상촬영(MRI) 결과 CJD 환자임을 확인했다"며 "그러나 현재 유럽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광우병의 인체 감염 형태인 '변형 크로이츠펠트- 야콥병(vCJD)'과는 무관한 것으로 판명됐다"고 말했다. 나 교수는 "광우병보다 전염성은 떨어지지만 격리치료가 필요한 만큼 정부 차원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광우병은 양고기 등 동물성 사료를 먹은 소의 뇌에 생기는 신경성 질환이다. 소가 이 병에 걸리면 침을 흘리고 비틀거리는 증상을 보이다 곧 죽는다. 죽은 소의 뇌를 보면 스펀지처럼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광우병이 관심을 끄는 것은 사람에게도 감염 경로가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CJD라는 유사질환이 있기 때문이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성격이 변하는 등의 증상을 보이다가 급격히 치매가 진행돼 1년 이내에 사망한다. 대개 50대 이후에 발병하며, 인구 100만 명 당 1명 정도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CJD 환자는 모두 45명이다.
경희대병원에서도 지난 해 11월 CJD 환자로 의심되는 유모(62)씨가 한 달간 입원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서울대병원 신경과 전범석 교수는 "1993년 이후 서울대병원에서만 10여 명의 CJD 환자를 발견했다"며 "아직 감염경로가 확인되지 않았고 광우병으로 확인된 사례도 없는 만큼 너무 공포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농림부 가축위생과 이상진 사무관은 "광우병의 진원지인 유럽연합(EU) 15개국과 인근 15개국에서 생산되는 되새김질 가축과 그 부산물의 수입을 철저히 막고 있다"며 "미주지역 등에서 동물성 사료가 일부 수입되고 있지만, 광우염 감염 사례가 보고되지 않은 개, 닭 등에게만 먹이고 있어 안전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광우병으로 의심되는 환자가 발생해 보건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지난 해 12월 강남시립병원에서 퇴원한 김모(36ㆍ경기 부천시)씨는 나이가 젊고 급격히 증상이 악화해 광우병 진단을 위한 뇌 조직검사를 권유 받았다. 그러나 보호자들이 검사를 거부하고 퇴원해 현재 집에서 요양 중인 상태.
광우병의 병원체로 추정되는 변형 단백질(프리온) 전문가인 한림대 의대 환경생명과학연구소장 김용선 교수는 "지금까지 발생한 CJD 환자는 일단 광우병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가 CJD를 일으키는 유일한 원인이라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여러 원인 중 하나일 가능성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프리온이 사람은 물론 소, 양 등도 감염시키므로 광우병이 CJD의 병원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설사 광우병으로 의심되는 환자가 있어도 사실 확인이 어려운 문제가 있다. 최근 인천 길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은 이모(50ㆍ여)씨는 광우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뇌 조직검사를 권유받았으나, 이를 거부하다 숨진 뒤 화장 처리됐다.
경희대병원 신경과 전경천 교수는 "광우병 여부를 확진하려면 뇌 조직검사가 필요하지만, 돈이 많이 들고 치료되는 병이 아니어서 환자나 보호자들이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림대 김 교수는 "보호자들이 조직검사나 사후 부검을 거부하면 현실적으로 광우병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다"며 "외국에선 사망 후 강제 부검을 의무화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법적, 제도적 보완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보건당국은 그동안 발생한 CJD 환자들이 국내에서 유통중인 쇠고기를 먹고 발병한 증거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최근 CJD 발생을 억제하기 위해 이 질병을 법정전염병으로 지정해 관리하기로 했다.
고재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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