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타지문학은 독서시장에서 가장 거센 흐름을 이뤄가고 있다. 역사적ㆍ현실적 한계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젊은 세대가 이끄는 환타지문학의 붐은 대중문학이 지닌 질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독자층을 착실하게 형성하면서, '환타지문학 비평'까지 태동시키기에 이르렀다. 환타지문학의 세계를 두 차례로 나눠 소개한다."도스토예프스키도, 헤르만 헤세도 읽었지만 '하얀 로냐프강'만큼 제게 감동을 주는 소설은 처음 봤어요. 그간 한국 문학에는 왜 이런 작품이 없었나요?"(한 중학생 독자)
"내가 왜 '해리 포터' 시리즈 같은 작품을 쓰지 못했는지 정말 후회스럽다. 우리 소설도 이제는 시선을 돌려야 한다."(소설가 K씨)
'하얀 로냐프강'(자음과 모음 발행)은 스물다섯 살의 컴퓨터공학도가 쓴 5권짜리 국산 환타지 소설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이제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는, 영국 여성작가 조앤 K.롤링의 세계적 초베스트셀러 환타지 소설이다.
일반 독자는 물론 전통적 소설 양식을 고집해온 문인들조차 이제는 '환타지'가 우리 문학의 뚜렷한 장르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마치 성인 독자들이 젊은 시절 무협지에 빠져들었듯이 환타지는 신세대 독자들은 물론 정통문학의 생산자들까지 사로잡고 있다.
환타지문학의 무엇이 독자들을 열광케 하고 있을까.
"'해리 포터'를 추월할 만한 작품은 당분간 별로 없을 것이라고 단언해도 좋을 것이다." 그간 '해리 포터'를 애써 외면하다시피 해온 평단의 분위기에서 문화평론가 김종엽(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씨는 계간 '세계의 문학' 2000년 겨울호에 본격 문예지에 실린 평론으로서는 아마 처음으로 '해리 포터에 관한 몇 가지 단상'이란 글을 발표했다.
김씨는 이 글에서 '해리 포터' 시리즈가 '단순한 형태의 성장소설'이며, '오늘날 대중문화에 일반적인 스릴러 양식을 어린이 문학에 도입'한 것에 불과하다고 전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이 고유의 환상을 충족시킴으로써 자아의 확장을 경험하게 하고, '소공자' 와 같은 인습적 가족 로맨스를 반복하면서도 어린이를 '자아 정체성의 탐구라는 긴 터널'로 이끌어감으로써 성공적 작품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국내에서 1999년 11월 중순에 1부 '마법사의 돌'이 첫 출간된 후 1년 2개월 여만에 340만부라는 기록적 판매부수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출간된 4부 '불의 잔' 3권만도 100만부나 팔렸다. 컴퓨터통신 공간에서 연재되는 환타지소설의 경우 매회 평균 조회건수가 1만 건을 훨씬 넘는 것들도 많다.
인기 연재물의 경우는 인터넷을 통해 단숨에 수십 개의 사이트로 옮겨져 읽힌다. '드래곤 라자'로 국내 환타지소설의 물꼬를 튼 이영도씨는 최근 원고지 8,000장에 달하는 전 8권의 '폴라리스 랩소디'를 발표했다.
출판사 민음사는 이 방대한 양의 책을 무려 1,560쪽에 이르는 한 권의 호화양장본으로 만들어 한정판매, 단숨에 매진시키기도 했다.
마법사와 이계(異界)가 등장하고, 한국의 감성과는 동떨어진 중세의 기사와 난장이가 등장하는 환타지소설은 이제 우리 문학의 대중적 장르로 확실하게 자리잡은 것이다.
문화평론가 이재현씨는 "한국사회에서 환타지 소설의 고전이 읽히고, 더 나아가 한국 사람 스스로가 환타지 소설을 쓰게 되었다는 것은 사회사적ㆍ문화사적으로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일제강점, 분단, 전쟁, 가난 등의 역사적 체험으로부터 자유로운 세대,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서구적인 근대성을 나름대로 체험하고 있는 세대"가 환타지의 독자라고 분석했다.
순수문학이 침체에 빠진 상황에서 환타지문학은 한국 청소년 독서 시장의 새로운 출구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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