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유학생 이수현(27ㆍ고려대 무역학과 4년 휴학중)씨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이씨가 다니던 도쿄(東京) 아카몬카이(赤門會) 일본어학교에서 29일 낮에 거행된 장례식에는 일본 정계 요인들을 비롯한 1,000여명의 추모객이 줄을 이었다.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를 필두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외무성 장관과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문부과학성 장관, 이부키 분메이(伊吹文明) 국가공안위원장 등 각료들이 잇달아 빈소를 찾아 "일본 국민 모두가 용기있는 행동에 감명하고 있다"고 아버지 이성대(李盛大ㆍ61)씨와 어머니 신윤찬(辛閏贊ㆍ50)씨를 위로했다.
전날에 이어 이날 다시 빈소를 찾은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의원은 "유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조치를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가토 고이치(加藤宏一) 자민당 전 간사장은 "한일 양국 간에 과거에 여러 가지 일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순간적으로 용기있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키워준 부모님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장례식장에는 오기 지카케(扇千景) 국토교통성 장관과 도쿄 경시청장 등의 표창장이 전달됐다.
이씨를 전혀 모르는 일본인 조문객만도 500여명에 달했고 아카몬카이 일본어학교에는 애도 전화와 팩시밀리가 빗발쳤다.
아버지 이씨는 "커다란 꿈을 안고 일본에 온 아들이 꿈을 이루지 못했다"면서도 "일본 전체가 아들의 죽음에 감동을 받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헛된 죽음은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 위안이 된다"고 밝혔다.
이씨의 시신은 인근 화장터로 옮겨져 화장됐다. 그의 유골은 이날 저녁 어머니 품에 안겨 신오쿠보(新大久保)역의 사고 현장을 찾았으며 30일 아침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가 집 부근에 있는 정수사 지장전에 안치될 예정이다.
신오쿠보역에는 이씨의 의로운 죽음이 보도된 27일 오후부터 꽃다발을 홈에 두고 가거나 역직원에게 맡기는 사람들이 잇달아 전동차 운행에 지장을 줄 정도에 이르자 역장실에 꽃다발을 보관했다가 운행이 끝나는 새벽에 홈에 내다놓고 있다.
일본인들은 이씨의 용기있는 행동을 기리는 공로비를 역구내에 세울 것을 잇달아 진정하고 있어 철도회사가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갔다.
도쿄=황영식특파원
yshwang@hk.co.kr
■ 고려대, 이수현씨에 명예졸업장 수여
고려대는 이날 김정배 총장 주재로 긴급회의를 열고 이수현씨의 의로운 죽음이 학교의 명예를 드높인 만큼 명예졸업장을 수여하고 학생 교수 등 교내의견을 폭넓게 수렴, 추모비를 세우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키로 했다.
4학년 1학기까지 마친 이씨의 평균 학점은 3.55로 상당히 우수한 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후까지 이씨의 개인 홈페이지(blue.nownuri.net/~gibson71) 방문자수가 9만명을 넘어서는 등 이씨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이버 조문'이 계속 됐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이수현씨 유족에 조전
김대중 대통령은 29일 고 이수현씨 유족에게 조전을 보내 조의를 표하고 위로했다.
김 대통령은 "고인은 비록 우리 곁을 떠났지만 살신성인의 숭고한 희생정신은 한일 양국 국민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며 "고인의 의로운 삶은 길이 남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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