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행정의 개혁이 온갖 편법으로 흔들리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겉으로 구조조정의 모양새만 갖추고 뒤로는 경쟁적으로 시설관리공단 같은 불필요한 조직을 신설, 퇴직대상자를 전직시키거나 별도정원으로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전남도의 경우 지난해 11월 22개 시ㆍ군의 총정원이 1만1,692명이었으나 1월말 현재 1만1,868명으로 오히려 176명이 늘어나는 기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편법 구조조정 실태 ▼
인천 서구와 남구는 지난 1일자로 설립한 시설공단에 퇴출대상자 각각 25명과 6명을 이직시켰다. 전남 순천시와 신안군도 지난해 5월 상하수도관리사업소와 환경위생사업소를 만들었고, 경기 과천시와 수원ㆍ용인ㆍ안성시도 1999년과 지난해 시설공단을 잇따라 설립,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피했다.
경남 창원에선 구조조정된 도청과 시청 공무원이 지난해 11월 개장한 창원경륜장의 관리직을 차지해 경기단체들이 "전문성도 없는 공무원들이 자리를 싹쓸이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99년4월 지방공기업법을 개정, 공사ㆍ공단 설치권을 행정자치부에서 지자체로 이양해 사실상 이 같은 편법의 길을 터준 결과다.
편법의 수단은 다양하다. 전남도는 지난해 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시행으로 지방공무원에 사회복지직이 신설되자 구조조정 대상자 139명을 사회복지직으로 전환하고, 행정직 8ㆍ9급 22명을 교육직으로 전직시켜 도내 일선 교육청으로 재 배치했다.
▼광역-기초단체간 갈등▼
개혁을 피하는 은신처를 마련하기 위해 각 시ㆍ도와 시ㆍ군ㆍ구는 공단설립권 등을 놓고 추악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충남도는 지난해 쓰레기수거와 하수처리 등을 총괄하는 시설공단을 설치하려 했으나 산하 각 시ㆍ군들이 자체적으로 업무를 민간위탁하겠다고 반발, 계획이 무산됐다.
전남에선 환경기초시설을 통합관리할 '전남환경공사'를 설립하려는 도측과 이에 반발하는 시ㆍ군측이 2개월째 기싸움을 하고 있다.
자리다툼도 치열하다. 부산 북구가 지난 13일 지역경제과장에 구청소속 K씨를 전보발령하자 부산시는 며칠뒤 같은 자리에 시의 J계장을 발령, 한 자리에 2명을 앉히는 사태가 일어났다. 결국 북구청이 J씨를 동장으로 받아들였으나 북구청 공무원직장협의회는 "시가 구조조정의 부담을 떠넘겼다"며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하위직과 기능직만 쫓아낸 인력감축 ▼
지난 3년동안 감축된 지방공무원 4만9,506명 가운데 6급 이상은 9,296명으로 전체의 18.8%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7급 이하와 기능직 몫이었다. 이 때문에 전남도의 인력구조는 전체 공무원 가운데 9급이 5%(667명)에 불과한 기형(奇型)을 이루고 있다.
대전대 안성호(安成浩ㆍ행정학) 교수는 "중앙정부도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자치단체에 무리하게 인원감축 규모까지 할당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정화기자 jeong2@hk.co.kr
전성우기자 swchun@hk.co.kr
■읍·면·동사무소 구조조정 '無風'
모두 1만500명의 공무원을 감축하겠다던 읍·면·동사무소 기능전환사업도 실제로는 이 사업과 직접 관련돼 퇴출당한 인원이 한명도 없어 당초 취지가 민망할 정도다.
행정자치부는 2001년말까지 읍·면·동사무소의 기능을 일반행정 중심에서 민원·문화·복지 중심으로 전환하고, 사무소당 평균 15명이던 인력을 9명으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3,511개 사무소에서 감축하는 공무원 1만500명은 ▲민간 위탁 6,000여명 ▲기구 통폐합 4,500여명을 포함, 모두 2만1,000명을 줄이는 2단계 정부 인력감축안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읍·면·동사무소 1곳당 평균 6명에 이르는 감축대상 인원은 퇴출되는 대신 모두 시·군·구청으로 자리만 옮기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숫자상으로만 생색을 낼 뿐 실제 기능전환에 따른 공무원 퇴출은 전무한 것이다.
행자부 관계자는 "꼭 읍·면·동사무소 인력이 아니더라도 전체 시·군·구 공무원에서 1만500명을 추가 감축하면 구조조정 숫자는 맞게 될것"이라며 "일부 시·군·구의 소극적 자세와 공무원의 반발로 일정이 지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연말까지 사업을 완료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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