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결혼한 지 반년도 채 안 되는 아내를 잃을 뻔했다. 나는 지난해 7월에 결혼하고 나서 서울의 어느 재개발된 동네에서 세 들어 살고 있다.물론 재개발이라고 해도 고층 아파트군이 아니라 학생들이 주로 사는 원룸 주택 밀집 지역으로, 우리가 사는 단지는 일찍부터 입주가 시작된 반면 주변에선 여전히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어느날 아침 서둘러 출근길에 나선 아내는 계단을 내려와 건물 입구 문을 열고 골목길로 나갔다. 그 순간 아내의 머리 바로 위로 쇠막대기가 떨어졌다.
운동신경이 좋은 아내는 순간적 판단으로 몸을 피해 아찔한 순간을 무사히 넘겼다. 혹시 운이 좋지 않았으면 결혼식에 이어 장례식을 치러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도로키 히로시ㆍ서울대 지리학과 박사과정 공포에 질리다 못해 화가 난 아내는 곧바로 건축 현장사무실로 가서 항의를 했다. 그러나 스스로 '소장'이라며 나선 아저씨는 "안 맞았으면 됐지 왜 그리 신경질 내느냐" 고 항의하는 것이 잘못된 것처럼 거꾸로 아내를 혼냈다고 한다.
아내는 우리에게 세를 준 집주인에게로 갔다. 그런데 집주인은 아내의 항의에 난처해하며 사정을 얘기했다.
"저도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지금 이 건물의 옹벽공사가 안 되어 있어서 시비를 걸다간 끝내 공사를 안 해 줄 수도 있으니 참으세요".
그 역시 공사의 안전관리에 문제가 있음을 알면서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집주인이나 입주자가 건설업체의 억지와 배짱에 그대로 당할 수 밖에 없는 사실에 망연자실했다.
아내가 당한 사고는 과실이라기보다 거의 필연적으로 생긴 일이다. 공사현장에서는 공공도로에 물건이 떨어지지 않도록 차단 그물을 단단히 쳐야 되는데 그것을 전혀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현장 노동자 중 안전모를 제대로 착용한 사람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절망적인 안전 불감증이다. 그런 사람들은 누가 다치거나 죽어도 "재수 없었구나"라는 한 마디로 문제를 끝내 버릴 것이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95년 삼풍 참사를 일본 매스컴들은 텔레비전, 신문을 막론하고 앞 다투어서 톱뉴스로 보도하였다.
그들의 논지는 거의 하나로 집약된다. 말인 즉 '급격한 경제성장의 후유증'이다. 그것 하나로 사건의 모든 원인을 설명하려고 했다.
나 역시 그 때는 그랬구나 하는 생각으로 그냥 넘어갔다. 그러나 서울에서 오래 살고 나서, 특히 이번 사건을 겪고 나서는 '급격한 성장'만이 문제의 본질이 아님을 깨달았다.
시기의 차이는 있으나 한국과 마찬가지로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룩한 싱가포르나 타이완에서 지진도 없이 백화점이 무너진 일은 없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이 정도는 괜찮다' 는 적당주의와 안전 불감증이라고 생각한다.
버스나 택시를 잡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차도로 내려가는 승객, 공사중인데도 개통시키는 지하철, 그리고 현장 종사자는 물론 통행인의 안전도 염두에 두지 않는 건축현장.
물론 실제로 사고가 나는 확률은 몇 천분의 1, 몇 만분의 1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가능성이 적더라도 사고의 확률을 0으로 근접시키는 노력을 게을리 하면 또다시 나라 망신시키는 어이없는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사고는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적당히 안전관리를 하면서 이 정도면 괜찮다는 식의 사고방식이야말로 위험천만하다.
이런 분위기가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한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참사는 되풀이될 수 있고, 우리의 가족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위험한 순간을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
정부와 구청 등 감독책임자는 업무 태만을 그만 두고 당장 이런 부실 시정에 나서야만 한다.
도도로키 히로시
서울대 지리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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