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독수리의 3분의 1 정도인 800여 마리가 경기 파주, 연천과 강원 철원에서 이번 겨울을 보내고 있다. 하늘의 왕 독수리가 시베리아, 몽골에서 파주 연천까지 오는 가장 큰 이유는 먹이 때문. 이 곳의 도축장이 이들을 부른다. 여기에 먹이를 챙겨주는 사람들의 손길도 한몫을 한다.경기 파주시 공무원 백희순(白熙順ㆍ27ㆍ별정8급)씨도 독수리에게 먹이를 챙겨주는 사람 중 한 명. 문화재 담당이라 천연기념물 243호인 독수리 보호는 그의 업무이지만 워낙 독수리 사랑이 각별해 한국조류보호협회 회원들이 '독수리 엄마'라고 부를 정도이다.
"독수리요, 워낙 용맹스러워서 추위도 모르고 배고픔도 잘 참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배가 고프면 하늘을 날다가도 그냥 추락합니다.
사람에게 발견돼 치료를 받고 허기진 배를 채우면 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대개 목숨을 잃습니다."그래서 올 겨울 광탄면에서 추락한 녀석을 발견하고는 급히 가게로 달려가 닭 한마리를 사다가 던져 준 일화도 있다.
그는 겨울이면 파주시내 도축장에서 소 내장과 돼지머리 등을 얻어 독수리가 모여있는 적성면 두지리 개천변에 던져준다. 물이 줄줄 흐르는 내장을 포대에 담고 운반해 삽으로 퍼주는 일을 올 겨울에만 다섯 차례나 했다. 한 번에 퍼주는 분량이 반 톤 정도.
"얼마나 비위가 상했는지, 지금은 내장이 들어가는 해장국은 쳐다보기도 싫어졌어요."
최근에는 폭설과 강추위로 폐사한 닭 돼지 송아지를 얻어다 먹이로 던져주기도 했다. 독수리 먹이 비용 300만원을 올해 파주 예산에 처음 만들어넣은 것도 그이다.
1993년 행정자치부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 97년 3월 파주시로 옮겨와 줄곧 문화재 일을 맡고 있다. 이 일을 하면서 접하는 새의 세계는 무척 신기하다고.
"독수리 먹으라고 죽은 돼지를 통째 던져 놓아요. 그러면 까치와 까마귀가 먼저 덤벼듭니다. 그 놈들이 시식을 하고 나면 그제서야 독수리가 달려옵니다. 아무리 하늘의 왕이라도 텃세는 무시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지난해 1월 결혼한 백씨는 "아이가 태어나면 독수리처럼 씩씩하게 자랐으면 좋겠어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박광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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