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여성가장시대 / (上) 남편 대신 나선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여성가장시대 / (上) 남편 대신 나선다

입력
2001.01.27 00:00
0 0

남편직장의 구조조정은 주부에게도 감당키 힘든 고통.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회이기도 하다. 남편의 실직으로 인한 가정의 위기 상황을 취업 및 창업으로 극복, 당당한 가장 역할을 해내는 주부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실제 최근의 통계조사에서도 여성가장들 중 남편을 대신해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비율이 눈에 띄게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미 우리 사회의 새로운 조류도 뚜렷이 자리잡아 가는 '여성가장' '남성주부' 문화를 짚어본다.

여성가장이 크게 늘어나고는 있으나 아직까지는 그 활동분야가 파출부, 가사도우미, 간병인 등 이른바 3D업종이 대부분인 것이 사실. 그러나 이런 현실 속에서도 첨단 전문분야로 진출, 단순한 생계수단을 넘어 주부들이 적극적으로 자기실현을 해나가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인터넷으로 꽃을 주문 받아 배달하는 '온라인 꽃방'의 영업과장 정혜미(鄭惠美ㆍ44)씨는 이런 여성가장 가운데 한명. 1998년 명예퇴직한 남편이 이력서를 들고 여기저기 헛걸음하는 동안 통장이 거의 바닥나 가계에 위기가 닥치자 대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평소 인터넷을 즐겼던 정씨는 지난해 7월 인터넷 구인란에서 주부 꽃판매사원 모집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이튿날 면접에서 "생일, 결혼기념일 등을 맞는 가족에게 e_메일을 띄워 꽃 배달을 권유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아 당장 채용됐다.

이 제안을 활용, 매출을 단박에 20%나 올린 회사는 최근 정씨를 과장으로 전격 승진, 발령했다.

이 회사 사장 나미경(羅美景ㆍ32)씨도 여성가장이다. 남편이 경영하던 회사가 부도가 난 뒤 반년만인 지난해초 친정에서 사업자금 2,000만원을 빌려 회사를 차렸다. 다양한 상황에 맞는 꽃을 선택형으로 주문케 하는 판매방식이 인기를 얻으면서 지난해말 빌린 돈을 갚고 올해부터는 흑자경영에 들어갔다.

오형애(가명ㆍ42)씨를 포함한 3명의 주부는 같은 공기업에 다니던 남편들이 최근 한꺼번에 퇴출 당하자 두달전 힘을 합쳐 결혼음식전문점을 차린 경우.

오씨가 전화받는 일과 총무를 맡고 나머지 두 주부는 예식장을 돌아다니며 영업하는 방식이다. 오씨는 "아직은 어렵지만 반년만 지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주부 취업의 가장 큰 장애는 사실 내부의 반대다. 별다른 방도가 없으면서도 '자존심' 상하는 남편으로서는 일단 가로막고 나서게 마련. 한국 YWCA 컴퓨터 강사 서지은(32ㆍ가명)씨도 그런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대기업 회사원이던 남편이 구조조정 당한 뒤 차린 음식점마저 실패하자 자신이 대학 재학시의 전공을 살려 취업일선에 뛰어들었다.

"1년반 동안이나 가족 모두 벌이가 없이 사는 바람에 무척 힘들었어요. 그런데도 체면을 생각한 남편과 시부모님, 심지어 딸 아이까지 일하겠다는 저를 말렸죠. 그러나 요즘에는 가족 모두가 격려를 해줍니다. 특히 남편은 아이들을 돌보고 청소, 빨래에다 음식장만까지 기꺼이 도맡아주고 있어요."

여성가장들의 모임인 소리회 김미정(金美貞ㆍ35) 대표는 "실직하거나 사업에 실패한 남편을 집안에서 위로나 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여성의 미덕이 아니다"라며 "주부들도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찾고 여의치 않으면 창업전선에도 뛰어들어야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은호기자 leeeunho@hk.co.kr

■여성가장 현황

경제가 어려워지고 구조조정이 다시 본격화한 지난 한햇동안 여성가장은 큰 폭으로 늘어났다.

26일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말 여성가장의 수는 214만4,645명. 이는 경제난 이후 일시적으로 경기가 회복됐던 1999년말 201만7,235명보다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여성가장의 실업률은 99년말 3.04%에서 지난해말 2.39%로 감소했다.

1년 사이 이같이 여성가장 수가 급증한 데는 남편이 일자리를 잃으면서 주부들이 적극적으로 취업과 창업에 나선 것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노동부의 분석이다.

실제로 1년 사이 배우자가 있는 여성가장의 수는 70만4,063명에서 83만1명으로 급증한 반면 미혼, 남편과의 사별, 이혼 등에 따른 여성가장 수는 99년말 131만3,172명, 지난해말 131만4,644명으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여성가장 가운데 40대가 50만2,029명에서 58만7,931명으로, 고졸 이하 학력자가 171만3,269명에서 183만8,629명으로 각각 가장 많이 늘어 아직은 여성가장이 주로 저학력층의 중년에 치중돼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