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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김인숙-전만규 "우리 삶 포기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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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김인숙-전만규 "우리 삶 포기 못해요"

입력
2001.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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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활터전은 우리가 지킨다."지난해는 거창한 명분이나 권력만으로 더 이상 서민들의 삶의 공간을 짓밟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 한 해였다. 피해자인 시민들이 그냥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주민운동을 주도한 고양시 러브호텔 및 유흥업소 난립저지 공동대책위원회와 매향리 미 공군 폭격장 철폐를 위한 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들이 만나 새해에도 계속될 주민운동을 설계해보았다.

■김인숙(金仁淑)

1954년 대구서 태어났으며 성균관대를 2년 수료했다. 1996년 '쾌적한 삶'을 찾아 서울서 고양으로 이사했으며 96년부터 올 1월10일까지 고양여성민우회 대표로 활약했다.

현재 고양시 러브호텔 및 유흥업소 난립저지 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전만규(全晩奎)

1956년 경기 화성군 매향리에서 태어나 화성군 삼괴중학교를 졸업했다. 88년부터 매향리 미 공군 폭격장 철폐를 위한 주민대책위 위원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로부터 인권상을, 환경운동연합으로부터 녹색환경인상 시민상을 받았다.

_ 먼저 지난 한해, 두 분이 벌인 운동을 정리해 주시겠습니까.

▦전만규= 매향리 미공군 쿠니사격장(쿠니사격장은 매향리의 기총사격장과 농섬의 폭탄투하훈련장으로 구성돼있다) 철폐운동은 1988년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우리 사회에 냉전의식이 워낙 강해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지난해에는 노근리사건 등이 불거져 국민들이 매향리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김인숙= 99년 7월 대화동 아파트 단지에서 16㎙ 떨어진 곳에 갑자기 러브호텔이 4개나 생겨 고양여성민우회가 문제를 제기했지요.

그러나 고양시는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4월 국회의원 선거 직후 탄현지구에 러브호텔 10개가 한꺼번에 허가났습니다.

그런데 8월에 또다시 러브호텔 23개를 허가해서 대화동 마두동 백석동 탄현동 등 4개동 주민들과 고양시민단체연대가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_ 미군사격장이나 러브호텔로 어떤 피해를 입었습니까.

▦전만규= 쿠니사격장은 51년 8월부터 있었습니다. 그동안 오폭이나 불발탄 폭발로 12명이 죽고 9명이 팔다리를 잃었습니다.

문전옥답 38만평이 미군사격장으로 강제 수용됐고 마을 앞 황금어장도 폭탄투하가 없는 날(일주일에 한번)에만 출입할 수 있습니다. 아침 9시부터 하루 13시간씩 400여회 폭탄이 투하되는데 소음이 138㏈ 정도입니다.

폭격기의 저공비행도 위협적이지요. 공군 조종사의 헬멧이 보일 정도니까요. 지난해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회에서 현장 조사를 나왔는데 일행 중 임신 5개월의 여자변호사도 있었습니다.

그 변호사는 저공비행과 폭격 소음에 놀라 실신까지 했습니다. 마을 임산부들은 모두 귀를 막을 탈지면을 가지고 다닐 정도지요.

아이들도, 벌써 네 다섯살이면 소음이 들리지 않는 읍내 유치원에 보내고 초등학생들도 역시 읍내 학원으로 보냅니다.

가장 슬픈 것은 주민들이 포악해지고 자살률이 높다는 겁니다. 제 아버님도 81년 목숨을 끊으셨지요. 매향1리에는 170가구가 사는데 60년 이후 32명이 자살을 시도해 28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정도 비율은 어디에도 없다고 합니다. 폭격 소음이 주민들의 안정적 삶을 해치고 초조감에 휩싸이게 한 뒤 죽음으로까지 내모는 겁니다.

▦김인숙= 정부에 문제의 해결을 요구한 적은 없습니까.

▦전만규= 80년대까지만 해도 미군문제는 성역 안에 있었습니다. 87년 민주화 이후에야 비로소 진정서도 내고 탄원서도 냈습니다.

하지만 반응이 없어 88년 12월 12일 사격장을 점거했지요. 그제서야 당국은 대화 창구를 마련했습니만 형식적이어서 진전이 없었어요.

그래서 사격장 레이더를 때려 부쉈는데 그 때문에 구속돼 8개월을 감옥에서 살았습니다. 89년 6월 2일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지난해 6월 2일에도 시위하다 구속됐지요.

▦김인숙= 대화동 러브호텔 13곳은 모두 학교정화구역 내에 있습니다. 정화구역 안에는 원칙적으로 이런 류의 시설이 들어설 수 없고 다만 예외적인 경우 교육청 학교환경정화위원회 심의를 통해 허가가 나지요.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고양에서는 예외 조항이 일반 원칙으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전만규= 아이들이 걱정이겠군요.

▦김인숙= 통학할 때 러브호텔앞을 지나 다닙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도 이제는 러브호텔이 뭐하는 곳인지 다 알지요.

어떤 학교에서는 러브호텔 이름대기 게임까지 한다고 합니다. 상가건물 일부 층에 들어선 러브호텔은 정말 문제입니다.

고층에는 러브호텔이 있고 아래층에는 학원, 독서실이 있어 아이들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러브호텔 드나드는 어른들과 만나는 거죠.

_ 국민들은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줄로 알고 있는데요.

▦김인숙=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시장은 "과장 전결 사항이라 모른다" "법이 정한대로 허가를 내줬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며 전혀 문제를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문제를 제기하는 와중에도 2,000가구가 입주 예정인 탄현2지구에 러브호텔 10곳을 최근에 또 허가했습니다. 파출소나 동사무소도 만들지 않은 곳에 말입니다.

▦전만규= 매향리 문제도 지난해 8월 국방부 발표 이후 육상 기총사격만 중지했을 뿐 폭탄투하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김인숙= 전선생님은 시골살림에 주민대책위까지 꾸려나가느라 어려움이 참 클 것 같은데요.

▦전만규= 11대 조상부터 살던 곳이고 저는 아버지로부터 버젓한 집도 한 채 물려받았는데 지금은 처분했습니다. 대책위 운영하는데 적지않은 비용이 들어서 그렇지요.

노모와 처, 아이들(1남3녀)은 지금 마을회관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한번은 제 처가 처가쪽 사람을 통해 서울에 직장까지 잡아놓은 뒤 "그만 싸우고 서울 가 살자"고 했습니다만,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_ 올해는 어떤 계획들을 갖고 계십니까.

▦김인숙= 자치단체장이 행정을 잘못했을 때 주민들이 제재할 아무런 법적 장치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주민소환제의 필요성을 저절로 깨달았지요.

물건도 하자가 있으면 리콜이 되는데 자치단체장을 주민들이 맘대로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주민소환제를 성취하기 위해 입법청원운동을 벌일 예정입니다.

▦전만규=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해 놓았습니다. 판결이 나오면 한미배상심의위원회에 다시 청구를 할 생각입니다. 미군기지나 미군범죄 문제를 겪는 다른 지역 주민들과도 연대하려 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사회적 관심이겠지요.

▦김인숙= 언제 꼭 한번 매향리를 가보고 싶네요.

▦전만규= 꼭 오십시오. 저도 멀리서 러브호텔문제가 잘 해결되도록 응원하겠습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김기철기자

kim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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