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국 천주교인이 첫번째 대규모 박해를 당하며 숱한 순교자를 낳았던 신유박해의 200주년이다.천주교는 신유박해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대대적인 기념사업을 준비해 왔다. 서울대 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가 주관하는 기념사업은 박해가 벌어진 2월 2일(음력 1월 10일)부터 시작해 끝나는 날인 내년 2월 4일(음력 12월 22일)까지 계속된다.
2월 2일 11시 서울 명동성당에서는 정진석 대주교가 집전하는 기념미사가 열리고 오후 2시부터는 가톨릭회관 7층에서 기념 심포지엄이 개최된다.
3월부터는 성지순례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매달 '이 달의 순교자'를 선정해 강연과 책자 발간 등을 통해 순교자들의 신앙을 알려나간다.
9월 23일에는 '신유박해 200주년 기념 신앙대회'를 3만여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행사로 치를 계획이다.
아울러 신유박해 때 순교자들에게 성인 칭호를 부여하는 시복시성(諡福諡聖) 작업도 추진중이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103인의 순교자를 성인으로 지정했지만 당시 신유박해 순교자들은 포함되지 못했다. 사료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천주교측은 1996년부터 조선왕조 실록 등의 사료 조사를 통해 신유박해 순교자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해 현재 8권의 자료집을 발간했다.
최근 구성된 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추진위원회는 이 자료를 바탕으로 시복시성 대상자를 최종 확정해 바티칸 교황청에 청원할 계획이다. 1차 대상자는 서울대 교구 64명 등 10개 교구 156명이다.
한국 천주교가 신유박해 재조명 사업에 힘을 쏟는 것은 신유박해의 종교적ㆍ신앙적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신유박해는 정조가 죽은 후 권력을 잡은 대왕대비 김씨가 1801년 1월 '천주교 믿음은 반역죄'라는 박해령을 선포하면서 시작돼 그해 말까지 100명이 처형당하고, 400여명이 유배된 사건이었다.
정약종 최창현 이승훈 등이 목숨을 잃었고, 정약전 정약용 형제가 유배됐다. 한국 천주교에 가한 최초의 대대적인 탄압이었으나, 살아남은 교인들은 경기 강원 충청 산간지방으로 숨어 들어 천주교 신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또한 순교가 '자신의 생명을 바쳐 신앙과 진리를 증거하는 행위'라는 측면에서 순교의 신앙적 의미도 남다르다. 이 순교자들을 성인으로 추대하는 것이 살아남은 교인의 신앙적 몫인 셈이다.
신유박해 당시 발생한 황사영 백서사건은 또 다른 의미를 역사에 남기고 있다. 황사영이 외세를 통해서라도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탄압의 전말을 적어 외세에 도움을 호소한 편지를 베이징(北京)에 보내려다 발각된 사건이었다.
종교의 자유와 국가체제 사이의 커다란 간극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발전한 셈이지만, 이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도 미완이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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