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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 과학의 파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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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 과학의 파우스트

입력
2001.0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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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 서거 100주년이었던 1932년 여름,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는 '파우스트'를 패러디한 연극이 무대에 올려졌다.물리학의 미래를 놓고 신과 메피스토펠레스가 심각하게 다투는 내용이었다. 연기자는 레온 로젠펠트, 펠릭스 블로흐 등 당시 꽤 유명했던 소장 물리학자들이었고, 극작가 겸 연출가는 26세 청년으로 훗날 분자생물학의 창시자로 불리게 되는 막스 델브뤼크(1906~1981)였다.

'과학의 파우스트'(사이언스 북스 발행, 백영미 옮김)는 1969년 박테리아 유전학 연구로 노벨 생리ㆍ의학상을 수상한 델브뤼크의 생애를 기록한 책이다.

독일 괴팅겐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가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생물학과 교수로 평생을 보내기까지 파란만장한 삶과 연구성과 등이 잘 정리돼 있다.

저자 에른스트 페터 피셔는 델브뤼크의 캘리포니아 공대 제자로, 그의 인터뷰 내용과 논문, 편지 등을 근거로 1988년 이 책을 썼다.

책은 언뜻 노벨상 수상 생물학자의 전기물로 보인다. 나치 치하 조국 독일에 대한 반발과, 미국으로 이민, 생물학자로서 입지 과정 등이 세세하게 기록했다.

특히 나치 인종이론의 허점을 꼬집다가 교화수용소에 수감된 일, 박테리아를 먹어치우는 바이러스(박테리오파지) 에 매료되는 과정 등은 자연과학도로서 델브뤼크를 생생히 드러낸다.

하지만 건조할 것 같은 그의 생애와 전기를 빛나게 하는 것은 교양인이자 한 인간으로서 그가 지녔던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다.

그것은 물리학계에서 리처드 파인먼 (그의 취미는 금고털이였다)이 그랬듯이, 그가 생물학계에서 기인으로 평가 받는 이유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는 괴테의 찬양자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델브뤼크는 아버지 서재에 있던 괴테 전집을 보존하기 위해 20권 가량을 화장실에 숨겼다.

그리고는 닳고 희미해진 표지를 자신의 필체로 고쳤으며 내용 대부분을 암기했다. '과학과 예술을 가지지 않은 이는 /누구든 종교를 가져야 한다'는 그가 즐겨 암송하던 대표적인 괴테 시의 한구절이었다.

그는 또한 소박한 예술 탐미주의자였다. 1920년대 알게 된 잔 마멘이라는 한 여성화가와 40여년을 친구로 지냈다.

마멘은 당시 나치에 의해 퇴폐주의 화가로 낙인 찍힌 상태였지만, 델브뤼크는 미국 이민 다음 해인 1938년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마멘 전시회를 열 정도로 평생 흠모했다. 그의 집과 연구실은 마멘의 그림으로 뒤덮여 있었다.

델브뤼크가 부인 메리 애들린 브루스와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게 되는 과정도 재미있다.

괴테의 시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델브뤼크는 1941년 결혼을 앞두고 허름한 옷솔 하나를 선물했다.

결혼 후 메리가 왜 그런 선물을 골랐는지 묻자, 델브뤼크는 이렇게 대답했다. "옷솔이 너무 귀여워 당신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앨프레드 허시, 살바도르 루리아, 제임스 왓슨 등 유명 물리학자와 생물학자와의 교류도 전기의 읽는 맛을 더한다.

상대 학자에게 "난 자네가 말하는 걸 한마디도 이해하지 못하겠네. 전부 다시 시작하자구" 라고 외쳤던 카리스마적 기질도 눈여겨볼 만하다.

자연과학도로서 그는 겸허했다. 그것은 과학과 종교 사이에서 고민하던 파우스트의 모습 그대로였다.

"살아있는 세포 속에는 그 조상들이 10억년 동안 행해온 실험의 역사가 들어있다. 몇 마디 간단한 말로 그것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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