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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세배 드리러 가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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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세배 드리러 가도 될까요?"

입력
2001.0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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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연휴가 끝났다. 내가 굳이 구정(舊正)이라고 말하는 것은 나의 설은 신정(新正)이기 때문이다.양력 설을 권장하는 정부 시책에 따라 우리집은 내가 어렸을때 부터 양력설을 쇠왔는데, 어느날 정부가 느닷없이 설을 바꿔버린 것에 대해 나는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설을 바꾸는게 왜 그토록 어려울까. 그것은 추억때문인것 같다. 많은 일가친척이 큰댁인 우리집에 모여 지내던 어린 시절의 설, 그 즐거운 추억을 담고 있는 것은 양력설이지 음력설이 아니다.

어린 시절의 명절은 왜 그처럼 즐거웠을까. 예쁜 설빔, 세배 돈, 윷놀이 등이 생각 난다. 그리고 온집안의 여자들이 모여 음식을 만들던 찬방이 생각 난다.

이제 확실히 알겠다. 어린날의 명절이 그렇게 즐겁고, 풍요로웠던 것은 며칠밤을 새우며 음식을 만들던 할머니, 어머니, 아주머니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세대의 여인들이 부엌에서 물러나면서 '명절증후군'이란 말이 생겼다. 명절이 다가오면 골치가 아프고, 짜증이 나고, 미리 몸살이 나거나 허리가 아파지는 여자들의 증세가 그것이다.

결혼한지 얼마 안되는 젊은 주부일수록 그런 증세가 심하고, 아내의 기분이 이러하니 남편들도 명절이 마냥 즐거울수 없다.

명절전후에는 으레 신문마다 "왜 여자들만, 그것도 며느리만 명절에 일을 해야 하는가" 란 항의를 다룬 기사나 독자투고가 실리곤 한다.

이런 현실을 탓할 수만은 없다. 사오십대 여성들만 해도 헌신적인 할머니 어머니 세대를 흉내라도 냈고, 명절이 오면 신경질이 난다는 식의 말을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젊은 여성들은 다르다. 그들은 가사를 배울 기회가 적어서 일을 힘들어 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면 참으려 하지 않는다.

남자들은 윷놀이하고 여자들은 음식상 차리기에 바쁜 명절, 시누이는 담소하고 올케는 일하는 명절, 손님대접에 수없이 상을 새로 차려야 하는 명절을 젊은 주부들은 참지 못한다.

사오십대 주부들도 꾀가 나기 시작한다. 그들은 명절 준비를 대폭 간소화하거나 아예 여행을 떠나서 명절의 중노동을 피한다.

세배손님이 많은 집일수록 주부들은 탈출 할 궁리를 한다. 찬방에서 며칠밤을 꼬박 새우며 떡을 썰고 한과를 만들고 전을 부치던 할머니와 어머니가 물러난 설은 더이상 푸근하지 않다.

한평생 정성껏 명절준비를 해왔다는 한 60대 부인은 작년 설부터 호텔에서 차례를 지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큰 방을 빌려 주문한 음식으로 약식차례를 지낸후 친척들이 식사를 같이 하며 신년인사를 나누었는데, 집에서 차릴때보다 훨씬 많은 친척들이 모여 좋았다고 한다. 비용은 각 집에서 나누어 냈으며, 올해는 설에 문을 여는 조촐한 식당을 찾았다고 그는 말했다.

그가 '호텔 차례'라는 결단을 내린 것은 앞으로 며누리들이 명절을 감당하기 어렵고, 그렇게되면 친척끼리 모일 기회가 사라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호텔이나 콘도에서 제사지낸다는 사람들을 '몰지각'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의 설명을 듣자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설에 세배드리러 가겠습니다"라고 은사에게 전화했다가 "집사람이 힘들어해서 올해부터는 세배손님을 못받겠네"라는 대답을 듣고 섭섭했다는 사람도 있다.

한 연구소 소장은 "사무실에 음료와 과일정도를 준비해 놓고 설 인사모임을 가졌는데, 집에서 손님을 맞을때와 비교하면 장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음력설을 지내지만 나는 나의 양력설을 바꾸지 못한다. 나의 추억속에 깊이 남아있는 푸근한 설, 그런 명절을 가능하게 해준 헌신적인 여성들의 세대는 갔다.

그런 할머니 없는 오늘의 아이들도 즐거운 명절의 추억을 갖게 될까. 고속도로에 10시간씩 갖혀있는 추억도 즐거울까.

발행인

msch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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