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거리는 집념이 내겐 있다. 정치판을 한번 바꿔 놓고 싶다는 투지 같은 것 이다." 민주당 정동영(鄭東泳) 최고위원은 최연소 최고위원으로 한 해를 넘긴 소회를 이처럼 미래형의 언술로 풀어 나갔다. 지난 과거는 조금도 성에 차지 않는다는 얘기처럼 들렸다. 그는 덧붙였다. "늘 답답함이 있다.그것은 거대한 불신의 벽이자 나 자신이 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낭패감이기도 하다."
정 최고위원은 극복하지 못해 답답하다는 불만과는 달리 지난해 '껍질'을 깨고 나오는 모습을 몇 차례 보여 줬다. 당 쇄신의 회오리 속에서 태풍의 눈에 있었고 권노갑(權魯甲) 전 최고위원의 퇴진을 대통령 면전에서 직언했다.
이 직언이 치밀한 계산에 근거한 전략이었는지, 순수한 충정의 발로였는지는 여전히 불명확하다. 하지만 결과는 동교동계 퇴진과 개혁 소장파의 약진으로 나타났다. 이전의 그가 '모양이 예쁜' 정치인이었다면 지금의 그는 정치적 파괴력을 지닌 몇 안 되는 정치인 중 하나다.
이 간극을 뛰어 넘지 못해 평범에 머무는 정치인이 부지기수인 점을 감안하면 그가 지난해 보여준 탈각은 고치를 벗어나는 나비의 모습을 닮았다.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느냐는 물음에 "올 한 해는 대권정치를 지양하고 경제에 진력할 때"라고 대답했다. 고정된 레퍼토리인 "부족한 부분을 채워 밀알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실제로 경제공부를 위해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2학년 편입원서를 냈고 3월부터는 서울대 세계경제 최고전략과정도 밟을 예정이다.
그러나 차기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다음 대선은 과거세력 대 미래세력의 대결구도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 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가 보여주는 협량의 정치는 구 정치의 연장선에 있으며 이에 대비되는 미래지향적 모습을 보일 때 민주당의 재집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존 F 케네디와 2단계 비전 얘기를 했다.
케네디가 동서냉전의 질곡에서 벗어나 우주로 뛰쳐나가는 뉴 프런티어를 비전으로 제시했듯 차기 민주당의 대선후보는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 세계사 조류에 합류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는 꿈을 파는 기술'이라는 말을 서너 차례 되 뇌였고 '올해가 새로운 비전을 준비하는 한 해가 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달변인 그도 화제가 '의원이적 파문'에 이르자 말끝을 흐렸다. "국회법 강행처리의 물리적 부담을 덜기 위한 우회전략으로 좋은 방책은 아니었지만 이해는 한다"고 말했다. '이해와 동의는 다르다'고 지적하자 지난해의 소회를 말할 때처럼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1953년 생인 정 최고위원은 내년이면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된다. 그도 이제 아주 젊은 나이는 아닌 것이다.
개혁 소장파 그룹의 리더, 미래세력의 대표 이미지가 물리적 연령의 한계와 무관할 수 없다. 그에게 주어진 기회의 시간이 의외로 짧을 수도 있다. 정 최고위원에게서 '정치판을 바꾸는 거대한 모험'에 본격 뛰어드는 시기가 멀지 않았음을 예감하는 이유다.
노원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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