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가 체제 우월성의 극적 희열을 맛본 것은 1930년대 대공황 때였다. 세계경제에 몰아친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공산주의 신생국 소련만이 유독 무풍지대였던 것이다.구미 제국들의 생산고 교역량이 급격히 떨어졌던 것과 반대로 소련경제는 이 기간 중 비약적 성장을 이룬다. "자본주의는 내적 모순으로 결국 붕괴하고 말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예언이 그대로 적중했으니 공산주의자들의 감격이 대단했을 것이다.
■구미 자본주의 국가들에 '계획경제'의 도입 바람이 불었던 것도 그 즈음이다. 대공황의 파고에도 끄떡하지 않는 소련 경제의 불가사의한 비결이 거기에 있음을 중시하게 된 것이다. 당시 계획경제 모델을 연구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쇄도하는 방문객들로 소련은 한때 관광특수까지 누렸다 한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당연시되고 있는 국가 총생산이니 국민 총소득이니 하는 지표 작성도 사실 그때 비롯된 것이다.
■'자본주의 몰락, 공산주의 도약' 계기가 됐던 대공황이 이른바 1929년 10월 '검은 목요일'에서 시작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 월 스트리트 증권시장의 대폭락 말이다. 당시 세계 공산주의자들이 증시와 투자자들에게 어떻게 손가락질을 했을지 눈에 훤하다. 바로 이런 '교훈'때문에서도 증권시장은 공산 체제가 마지막까지 인정할 수 없고, 받아들여서도 안 되는 금기(禁忌) 대상이었다.
■지난 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상하이 증권거래소 방문은 그래서 쇼킹한 사건이다.
아무리 미국 신정부 출범을 의식한 외교적 쇼업(Show-Up)이 필요했다 하더라도 공산 지도자로서 지켜야 하는 최후의 마지노선은 있는 법이다. 그러고 보면 김 위원장은 더 이상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중국의 변화에 대해 평했다는 '천지개벽'이 다름아닌 그의 사고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알을 깨고 나오려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외의 적정 온도 유지다. 지나쳐도, 모자라도 안 된다.
/송태권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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