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대회를 계기로 우리는 싫든 좋든 우리의 진면목을 전세계에 속속들이 보여 주어야 한다.과연 우리나라는 선진국인가. 우리의 자화상을 스스로 바라 보면서 "그렇다, 선진국이다"라고 장담할 수 있는 강심장은 별로 없을 것이다. 대회가 500일도 채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우리의 마음이 잿빛 하늘처럼 무겁게 가라앉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월드컵'이라는 크고 화려한 무대에 우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당당한 선진국 일본과 함께 '공동주연'으로 올라 서야 한다는 점이다. 일본이라는 주연배우는 깨끗하고 아름답고 아주 세련된 모습으로 등장, 좌중을 압도해 나가는데 우리는 추하고 일그러진 면모를 보인다면 어찌되겠는가.
이런 일에 대회조직위를 들먹이거나 끌어 들여서는 절대 안된다. 정부의 조치를 기대해서도 안된다. 4,500만 국민전체가 심각하게 생각하고 직접 나서야 된다. 선진국에 관한 사회학적 정의가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개인적인 소박한 생각으로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요건이 지적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첫째는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힘이 있어 국민들이 살만큼은 살아야 한다. 둘째는 문명이 발달하여 가시적인 사회인프라가 상당수준 갖춰져 있어야 한다. 셋째, 사회의 모든 체제나 제도가 민주적이고 합리적으로 정착되어 있어야 한다. 넷째는 보편적 문화는 물론 독창적 문화가 발전돼 있어야 한다.
물론 더 열거할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면 기본적 자질은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이 4가지 조건의 거울에 우리 모습을 비춰 보면 약간의 자신감이 생긴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우리도 합격점을 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자신감이다.
그러나 여기에 반드시 추가되어야 할 요건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곧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이 바람직한 시민의식의 덕목은 수백가지의 각도에서 지적되고 분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를 한마디로 뭉뚱그리면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으로 요약된다. 이점에 관해서 우리는 할 말이 없다. 우리가 일상의 틀 속에서 끊임없이 겪어야 하는 불편함, 상대방을 향해 뭉게구름처럼 피어 오르는 불쾌감, 외국인들을 향한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 이 모두가 따지고 보면 남을 배려하려는 마음이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는 옛날부터 염치와 체면을 중시하며 살아왔다. 선비정신이라는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그 결과 자존심이 강한 중국사람들로부터도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존경받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부지불식간에 우리 스스로가 시궁창에 내던져 버린 성숙한 시민의식을 되찾아 다시 우리의 트레이드 마크로 삼아야 한다. 월드컵이 아니라도 이 정신은 회복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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