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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귀숙씨, 안익태 작곡상 대상 / "各악기 음색바탕위에 색칠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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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귀숙씨, 안익태 작곡상 대상 / "各악기 음색바탕위에 색칠하듯"

입력
2001.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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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사와 안익태기념재단이 공동주최한 제8회 안익태 작곡상에는 총 17편이 응모, 이귀숙(37)씨의 '관현악 캔버스'가 대상을 차지했다. 대상에 버금가는 작품에 주어지는 우수상은 해당작이 없다.국내 여러 작곡 콩쿠르가 주로 유학에서 막 돌아온 신예나 아직 수업기에 있는 대학원생의 경연이 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안익태 작곡상에는 40, 50대 중견 작곡가를 비롯한 현직 대학교수가 5명이나 응모해 상의 권위를 더하고 있다.

안익태 작곡상은 관현악 작품만 대상으로 한 국내 작곡 콩쿠르의 효시로 1993년 제정됐다.

관현악곡은 실내악이나 독주곡에 비해 규모가 크고 작곡가 역량의 최대치를 요구하기 때문에 위촉이나 공모가 없으면 쓰기 어렵다.

그러나 연주자만 집중 조명하고 정작 모든 음악 활동의 근본이 되는 창작은 홀대해온 것이 국내 풍토이다.

이런 현실에서 안익태 작곡상은 작곡가의 창작의욕을 북돋아 한국 음악의 미래를 다지는 역할을 해왔다.

대상을 차지한 이귀숙(37)씨는 미국 여행 중이다. 최종심사 결과가 나오기 전날 시애틀로 날아간 그와 어렵게 통화했다. "기다려도 아무 연락이 없어 안된 줄 알고 떠났다" 는 그는 "믿어지지 않는다"며 기뻐했다.

수상작 '관현악 캔버스'는 유화 기법을 음악에 적용한 작품이다. 캔버스에 유화를 그리듯 오선지 위에 각 악기의 음색과 혼합으로 바탕을 깔고 색채를 입히고 덧칠을 해서 색감과 질감을 얻었다.

3관 편성, 연주시간 17분으로 "절제된 관현악법과 탄탄한 구조가 돋보인다"는 평을 받았다. "2000년 새해 첫날 새 천년을 향한 모든 소망을 흰 캔버스에 담았다. 작곡가로서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펼치면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싶다는 희망을."

'관현악 캔버스'는 엷은 색채의 현악기 서주로 시작한다. 유화를 그리기에 앞서 캔버스에 가볍게 바탕색을 칠하듯. 이어 클라리넷 독주가 나온다.

가느다란 희망처럼 출발한 클라리넷의 붓터치는 점점 짙어지고 곡의 중간에 이르면 모든 악기가 출동해 격렬한 효과를 빚는다. 색채는 얇게 줄었다가 두텁게 변하는 긴장과 이완을 거듭하다 힘차게 끝난다.

그는 처음부터 작곡을 전공한 게 아니다. 동덕여대 음악교육과(피아노 전공)를 나왔다.

연세대 대학원 음악이론 석ㆍ박사를 거쳐 미국 오하이오대학원, 오하이오주립대학원에서 작곡 전공으로 석ㆍ박사를 마치고, 1997년 귀국, 연세대ㆍ동덕여대ㆍ강남대ㆍ대진대에 출강하고 있다.

"음악이론을 전공하는 동안 남의 작품을 분석하다 보니 내 곡을 쓰고 싶어 미칠 것 같아서 혼자 많이 작곡했지만 제대로 배운 건 유학 때이다.

기본 훈련 없이 바로 작곡을 하려니 너무 어려웠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했다. 하도 힘들어서 연습실 피아노 앞에 앉아 운 적도 많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작곡은 고통스런 작업이지만, 보람이 있다.

마음에 흡족한 곡을 완성하거나 남들이 인정해줄 때 큰 희열을 느낀다."

명문대를 나온 것도, 국내에서 작곡을 공부한 것도 아닌 그는 스승이나 선배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귀국 후 어려움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지난 4년간 이번 작품까지 오케스트라곡 2개, 실내악ㆍ기악곡ㆍ합창곡 14개 등 더 열심히 곡을 썼다고 한다.

"나의 이번 수상이 누구든 노력하면 인정 받을 수 있다는 본보기가 됐으면 한다"는 말에서 그간 겪었을 고생이 짐작된다. 그의 첫번째 관현악 작품은 1999년 제2회 한민족창작음악축전 본선에 올랐으나 입상은 못했다.

욕심이 많다. "평생 동안 관현악곡 4개를 쓰는 게 목표였는데, 수상 소식을 들으니 용기가 솟아 6개로 늘려야겠다"고 했다.

관현악곡은 규모가 크고 쓰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박사과정에서 하나 쓰고 관두는데 비하면 대단한 의욕이다. 크리스찬인 그는 지난해 4악장의 부활절 칸타타를 쓴 데 이어 올해는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계획하고 있다.

종교음악, 협주곡 외에 언젠가는 오페라도 쓰고 싶다고 했다. "아직 미혼이라 작곡 밖에 할 일이 없다"면서 "결혼을 해야 감정이 성숙해서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 것 같아 결혼은 꼭 할 것"이라고도 했다.

■심사평

총 17편의 응모작들은 대체로 외국 것을 따라가지 않고 자기 색깔을 내려는 노력이 두드러지며, 기법적 실험을 넘어 음악성을 갖춘 작품이 많아져 반갑다. 그러나 여러 작품에서 타악기를 남용하는 경향이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필요한 악기만 골라 쓴 절제미덕 돋보여

본선 진출작은 8편이다. 대상에 선정된 이귀숙의 '관현악 캔버스'는 절제의 미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필요한 악기만 골라 쓰는 절제된 관현악법을 취함으로써 작품 속에 여백을 효과있게 삽입하는 슬기로움을 보이면서 악기의 색깔을 잘 드러내고 있다.

쉼표의 의미를 알고 쓴 작품이라 하겠다.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도 구조가 명확하고 전체적으로 잘 정돈돼 통일감도 있다.

반면 김주풍의 '두물머리'는 짧은 작품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 했다. 정순도의 '스티그마'는 연주의 어려움에 비해 음악적 효과는 의문스러운 비경제적 작품이다.

길일섭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은 전체적으로 산만한 느낌이다. 이찬해의 '동방의 빛이어라'는 음악적 흐름이 자꾸 끊어진다.

신유진의 '신국풍'은 특정 외국 작곡가의 스타일을 답습했다. 대상 수상자와 동명이인인 이귀숙의 '해빙'은 오케스트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인다. 이소연의 '한낮의 별빛'은 무엇을 말하려는지 분명치 않다.

심사하면서 느낀 가장 큰 아쉬움은 한국적인 작품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거문고협주곡과 관현악산조가 있었지만, 본선에는 오르지 못했다.

안익태 작곡상은 '애국가' 작곡가 겸 지휘자 안익태 선생을 기리는 상인 만큼 한국적인 색채와 정서가 담긴 작품이 많이 응모하기를 기대한다. 국적 없는 작품은 세계 무대에서 팔리지 않는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 이제는 그런 작품이 나와야 한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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