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권을 출범시키는 데 축제가 아닐 수 없다. 아칸소주 '시골출신'들에게 워싱턴을 내준 지 8년 만에 되찾은 정권이 아닌가.가랑비에 쌀쌀한 날씨를 아랑곳할 리가 없다. 취임식장인 국회의사당 앞 펜실베이니아가는 수십만의 군중으로 장식돼 조지 W 부시의 대통령 취임을 맞고 있다.
카우보이 모자를 보란 듯이 쓴 텍사스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군중을 헤집고 다니고, 밍크코트를 빼입은 공화당 부인들이 보안검색대 앞에 줄지어 서서 재잘거린다.
교사가 인솔하는 학생단체, 어렵사리 입장권을 얻은 일가족, 전국 각지에서 상경한 보통사람들도 원정 축하길이 즐겁기만 하다.
대통령 취임식장의 시위로는 사상 두번째라는 '반(反)부시' 시위대는 멀찌감치 차단돼 있다.
"워싱턴을 바꾸겠다"고 외쳐온 부시 대통령에게 1월20일은 분명 새 시대를 여는 날이다. 전임 빌 클린턴 대통령의 스캔들 수사가 마무리된 전날 부시 진영은 "새 시대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전 정권의 매듭을 상징적으로 강조했다.
이제 부시에게 이날은 스스로가 텍산(Texan:텍사스 사람)에서 워싱터니안(Washingtonian)으로 변신하는 날이다.
그러나 미국과 미국민에게 이날은 전혀 다른 의미의 감동을 자축하는 날이기도 하다. 부시 대통령의 취임에는 미국사회가 대내외에 과시하는 무언의 선언이 담겨 있다.
미국은 이날 선거쟁투에서 치부를 알알이 드러낸 극단적 정쟁의 종료에 합의하고 사회적 복원력의 강력한 회복으로 다시 전진하려는 의지를 과시하고 있다.
전ㆍ현직 지도자들이 차례로 소개되고 이어 부시 대통령이 등단할 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연사는 그와 함께 상ㆍ하원의 공화ㆍ민주 양당의 지도자를 함께 소개했고, 부시 대통령은 이들과 나란히 연단에 등장했다.
'법선(法選)대통령'논란의 주역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은 그 법복차림 그대로 새 대통령의 취임선서를 인도했고, 그 선서는 다시 환호를 불렀다.
부시 대통령은 공화당의 '미운 정적'이었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국가에 대한 봉사에 감사한다"고 취임사 모두를 시작했다.
이제 이들은 모두 선언의 주인공들이다. 반대시위가 있었다고 해서 구태여 공화당만의 축제라고 할 것만도 없다.
그러나 이 축제는 다분히 미국의 축제다. 미국이 새로운 시작에 나선 이날 세계의 시선에는 조심스러움이 담겨있다.
독보적인 초강국이 내디딜 행보에 쏠리는 당연한 관심 이상의 의구심이 부시 정부를 바라보고 있다. 워싱턴에 들어서는 부시 대통령은 국제사회에는 미지의 인물이다.
중앙정부의 국가적 업무를 다뤄본 적이 없는 그에게 세계적 현안들이 어떤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는 지 제대로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기라성 같은 참모들이 진치고 있지만 세계화의 새 원리로 돌아가는 세계는 그들의 전성기 때와는 판이하다. 축제를 만끽하는 부시 대통령과 백악관이 어떤 식으로 '세계화해'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근거는 아직 없다.
새 정부의 청사진이 나올 수 개월 동안 국제사회가 조바심으로 지켜봐야 할 현안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통령은 한 사람이고, 결정은 부시 자신의 몫이라는 사실에 미국이 나아갈 앞날에는 불확실성이 깃들어 있다.
"미국의 적들은 실수를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그는 이날 말했다. 그가 등장하고 한반도가 다시 급변의 조짐을 보인다는 생각에 그 불확실성은 피부로 다가오는 듯하다.
전혀 다를 부시 정부를 보면서 한국에서 날아간 취임식장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워싱턴에서 조재용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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