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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어린이도 인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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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어린이도 인권이 있다

입력
2001.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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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학교 문을 나서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옥수수 뻥튀기 장수와 빙수 장수가 나란히 있었다. 집 앞 골목에서는 만화가게가 손짓을 했지만 이삼일만 다니면 별 것 없다는 걸 알기에 유혹을 쉽게 뿌리치고 집에 돌아오면 대문가에서 기다리시던 할머니가 반갑게 두 손을 잡아주셨다.방의 아랫목에 묻어둔 찐 감자, 화롯가에 녹아가는 찹쌀떡이 기다렸다. 우리의 어린 시절 기억 속의 가정은 소박했지만, 등잔불처럼 온정스러웠다.

그로부터 사십년, 우리 사회는 발전과 발전을 거듭해 국가의 총 생산량은 100배가 넘었다. 그 사이에 가정은 산업일꾼의 '잠터'로 바뀌었다. 부모를 일터에 빼앗긴 어린이들의 생활은 물질적으로 풍족해진 반면 심리적으로는 결핍됐다.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가 초등학생 자녀를 둔 전국의 부모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부모의 15%는 어린이가 밥을 제때 먹는지를 걱정하고 있다. 어린이 열 명 중 세 명은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다.

빈집에 홀로 있는 어린이는 심리적으로 늘 불안을 느끼므로 내성적이고 위축된 성격을 형성할 수 있다. 혼자서 허기를 때우기 위해 패스트푸드를 먹곤 해서 영양상으로 편중되거나 비만아가 될 여지가 있다. 성인의 보호 없이 지내는 어린이들은 화재나 범죄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경제적 수준은 높아졌지만 약자의 인권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 신체적으로 약한 어린이는 전형적인 약자이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가정불화로 부모가 자녀를 동반해 자살하는 사건은 어린이 인권을 망각한 일이다. 부모는 어린이가 자신의 몸을 빌어 태어난 존재지만, 소유물이 아니며 '독립된 작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아동의 인격을 존중하는 사고는 언론매체와 교육을 통해 확산되어야 한다.

국가도 빈집에 어린이를 방치하는 것은 학대행위로 간주하고 그에 합당한 법적, 제도적 조치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어린이를 홀로 두어 심리적 불안을 느끼게 하고 범죄의 대상이 되도록 방치하는 것은 직접적 학대행동과 다를 바 없다.

미국에서는 부모가 어린 아동을 집이나 차 속에 방치하는 것을 아동학대죄로 다룬다.

경찰은 어린이를 부모로부터 격리시키고 어린이는 정부가 보장하는 위탁양육가정에서 일정기간 성장하게 된다. 어린이를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학대한 부모는 친권을 행사할 수 없으며, 인격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을 법원에서 입증하기 전에는 자녀를 되찾을 수 없다.

우리도 아동복지법에 방임을 규제하는 법 조항을 신설, 자녀의 안전을 소홀히 하는 부모를 경고 또는 제재해야 한다.

동시에 국가는 방과 후에 어린이들을 맡아 그들의 발달에 적합한 놀이활동과 특기활동을 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해야 한다. 초등학교에서 수업이 끝난 어린이들이 다른 시설로 이동하면 안전 문제가 뒤따르므로 시설은 초등학교에 마련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초등학교에서 남는 교실을 이용할 수도 있다. 안전문제 때문에 방과후 교실을 꺼리는 교장 선생님들에 대해서는 .학부모회의 협력과 보험 가입 등으로,부담을 덜어주고, 교사들의 초과 업무는 방과후 교사 또는 특별활동 교사를 충원해 해결하면 된다.

공교육기관에서 적응이 곤란한 어린이들은 보육시설의 방과후 교실을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 어린이들을 옛날처럼 마음껏 뛰어 놀게 하여, 인터넷의 오염된 쓰레기통을 뒤지는 일로부터 차단시켜야 한다.

어린이는 부모의 자녀이자 사회의 시민이다. 부모에게만 미루지 말고 국가는 어린이들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보호와 교육의 책임을 져야 한다. 그 하나로 어린이인권을 보장하는 법률적, 제도적 조치를 시급히 강구해야 하며, 방과후시설을 확충하는 경제적 지원과 인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국가의 미래가 어린이들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순형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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