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5년 1월 20일 프랑스의 화가 장 푸랑수아 밀레가 파리 교외의 바르비종에서 61세로 죽었다.노르망디의 그레빌에서 태어난 밀레는 셰르부르와 파리에서 그림을 공부한 뒤, 35세에 바르비종에 정착해 그 곳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농민들의 삶과 주변의 자연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밀레가 거기서 그린 '이삭줍기''저녁종''씨뿌리는 사람'같은 그림들은 그를 바르비종파의 대표적 화가로 만들었다.
바르비종파는 19세기 중엽 파리 교외의 퐁텐블로 숲 어귀 바르비종에서 활동한 일군의 풍경화가들을 가리킨다.
밀레, 루소, 코로, 뒤프레, 디아즈, 게라페나, 트루아용, 도비니를 흔히 '바르비종의 일곱 별'이라고 부르지만, 밀레는 그 별들 가운데서도 별이었다.
자연에 대한 경건함 속에서 사실주의와 낭만주의를 교직한 이 농촌 화가들 덕분에, 바르비종이라는 시골 마을은 외국에도 널리 알려졌고, 뒤에 일부 인상파 화가들도 퐁텐블로 숲은 작업의 근거지로 삼았다.
밀레는 적어도 한 세대의 한국인들에게 프랑스의 회화를 대표했다.
기자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엔 국어 교과서에 '저녁종'이라는 제목으로 밀레의 삶을 다룬 단원이 있었다.
그 글이 묘사하는 밀레는 그의 그림들처럼, 프랑스라는 나라의 화사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60년대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전원인이었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을 찾는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데가 밀레의 그림 앞일 것이다.
여담 하나, 밀레의 '이삭줍기'에는 두 종류의 도판이 있다.
밀레가 그린 진짜 '이삭줍기'에는 배경 멀리 말 탄 감독자가 작게 보인다. 그러나 그 감독자가 없는 '이삭줍기'도 도판으로 나돌아 다닌다.
이 그림이 사회성을 거세하기 위해 누군가가 손을 댄, 오직 서정적 그림으로서의 '이삭줍기'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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