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5일 소희(6ㆍ여)는 까맣게 타버린 얼굴로 아무 말이 없다. 엄 마는 그 앞에서 얼굴을 파묻고 울고만 있다.(1999년 11월5일)11월15일 수술실 안에서 소희가 엄마의 간(肝) 일부를 이식 받고 있다. 참혹하게 열려진 소희의 작은 몸 안으로 엄마의 사랑이 들어갔다.(11월15일)
소희가 희미한 웃음을 되찾았다. 자신에게 '두번째 간'을 건네준 엄마와 초롱한 눈망울로 대화하고 있다(11월25일)
유치원에서 소희가 또래 친구들에게 파묻혀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소희는 꽃머리띠를 한 여섯살 어린천사로 돌아와 있다(2000년 1월10일)
간암을 앓고 있는 소녀의 고통스런 모습에서부터 간이식 수술 장면, 회복까지의 과정을 담아낸 사진전이 열린다. 27일부터 나흘간 서울 종로구 관훈동 룩스갤러리에서 열리는 사진전 '소희야'가 그 것.
상명대 사진학과 양종훈(梁淙勛ㆍ41ㆍ포토저널리즘) 교수가 1년 3개월에 걸쳐 정소희(丁蘇熙ㆍ6)양의 혹독한 투병과정을 담은 필름 1,000여장 가운데 39장을 골라 '고통에서 희망까지' 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포토 스토리로 엮었다.
양 교수는 장기이식에 대한 사회적 인식 확산을 위해 기획전을 준비하던 중 1999년 11월 초 서울대병원 소아암 병동에서 소희를 만났다. 소희는 1년전 간암 4기의 절망적 판정을 받고 투병하다 마지막 수단으로 엄마의 간을 이식하는 수술을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어머니 신귀순(申貴順ㆍ33ㆍ서울 강남구 논현동)씨는 "처음 촬영부탁을 받고는 많이 망설였지만 희망을 붙잡는 심정에서 허락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이때부터 소희의 힘겨운 나날을 꼼꼼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항암치료로 빡빡머리가 된 모습, 고통을 견디지 못한 울음, 함께 울던 엄마 아빠.. 양 교수는 "7시간의 대수술을 카메라에 담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며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로, 회복실에서 다시 입원실로 옮겨지는 열흘동안의 과정도 긴장과 초조함의 연속이었다"고 회상했다.
소희는 이제 머리카락도 많이 나고 유치원에도 다닐 만큼 좋아졌다. 사진들을 보고는 "내가 너무 못나게 나왔네"라며 까르르 웃고는 엄마 뒤로 숨는다. 하지만 이식된 간의 거부반응을 줄이기 위해 면역억제제를 먹어야 하고, 앞으로도 1년간 2주일에 한번씩 병원을 다니며 항암치료를 계속해야 한다.
양 교수는 "이 사진전이 똑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수많은 병동의 아이와 부모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며 소희양과 어머니에게 감사해 했다.
정녹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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