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9일 내놓은 인사쇄신책은 부처의 힘있는 자리를 특정 지역 및 특정 고교 출신들이 과점하는 것을 막겠다는 고육지책으로 볼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도 "인사와 관련, 더 이상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확실히 하라"고 지시했다는 후문이다.정부가 마련한 인사 가이드 라인은 크게 두 가지. 우선 지난해 말 박금성 서울경찰청장 인사 파동에서 보듯 편중인사 논란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 및 정부부처의 핵심 요직은 지역할당에 버금갈 정도로 정책적 지역안배를 하겠다는 것이다.
능력 위주의 인사와는 다소 어긋날 수 있는 이런 방침을 시행키로 한 것은 더 이상 편중인사 시비를 방치할 경우 공직사회의 단합은 물론, 국민 화합도 기대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와 함께 각 부처의 3급 이상 고위직 공무원의 경우 '출신비율 상한선'을 두었다. 즉 한 부처에서 특정지역 및 학교 출신이 30~40%를 넘지 않도록 한 것이다. 학교는 출신 고등학교를 기준으로 했다.
정부는 각 부처별 특성이 있는 만큼 획일적으로 규제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고심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부처의 특성을 감안, 세부 기준은 추후에 만들더라도 사회통념상 "심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대략적인 선을 제시하는 게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중앙 인사위 관계자는 "지역 안배 케이스로 특정지역 출신 장관이 특정 부처에 계속 임명돼 자기 지역 사람을 요직에 등용함에 따라 수십년간 인사문제가 누적돼 온 부처들이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건교부의 경우 영남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고, 노동부는 호남 출신 비율이 높아 모두 상한선 제한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인사쇄신책에 대해 비판적 견해도 있다. 공직자의 출신 비율을 인위적으로 제한하거나 구색 맞추기식 지역안배 보다는 무능한 사람이 특정지역이라는 이유로 등용되고, 낙하산식으로 임명되는 사례들을 차단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공무원은 "정부의 인사 쇄신 의지가 어느 때 보다 강한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늘 공정한 인사를 외쳤지만 지켜지지 않아 편중인사 시비에 시달린 만큼 이번 만큼은 말보다는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진용기자
hub@hk.co.kr
■공직.시민단체등 반응
3급 이상 정부 고위직의 특정지역 및 학교 비율을 일률적으로 제한키로 한 방침에 대해 각 사회단체와 전문가 및 공직사회에서는 "연고주의와 인사편중 시비를 근절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긍정론부터 "지연ㆍ학연주의가 근절될 수 없을 뿐더러 능력이 무시되고 역차별 현상 등 부작용이 날 것"이라는 비판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정부과천청사의 한 국장은 "공직사회는 정실과 지연에 의한 '스킨십'과 '네트웍'이 없으면 되는 일이 없다"면서 "인위적으로라도 제한을 가해야 풍토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환영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 방안이 선언적인 의미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공직사회의 인사문제는 지역이나 특정학교의 전체적인 비율이 아니라 요직을 누가 차지하고 있느냐가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행정개혁시민연합 서영복 사무차장은 "인사의 지역편중을 해소한다는 측면은 바람직하지만 쿼터제가 너무 비현실적이고 얼마나 지켜질지도 의문"이라며 "가치나 권력의 배분은 법이나 제도 이전에 양식과 문화의 문제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세대 김판석(행정학과)교수는 "인사문제는 일시적인 고위직의 비율이 문제가 아니라 핵심포스트에 능력있는 인사를 배치하려는 정부의 지속적인 실천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집권초기 능력과 실적에 따른 공무원 인사를 천명해 놓고 이제와서 다시 '할당제'를 도입해 역차별을 부추긴다는 주장도 나왔다.
일부 공직자들은 "지역이나 학교의 비율을 일률적으로 30~40%로 규정한 것은 각 지역의 인구분포가 다르고, 현재 공직사회의 지역분포도 각각인점을 감안할 때 현실과 크게 동떨어진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새 인사쇄신책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이에 대해 중앙인사위원회 김명식 인사정책과장은 "인위적 비율 제한에 따라 야기되는 문제는 공무원들의 실적을 평가하는 성과관리시스템((PMS)을 도입해 해소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주요과제로 내건 목표관리제(MBO)가 이미 기존의 연공서열에 유명무실해지고 있어 새로운 평가시스템도 얼마나 효험을 볼지는 미지수다.
정정화기자
jeong2@hk.co.kr
■3급이상 공직자 출신高.지역 조사
국민의 정부 출범이후 영남출신 고위공직자는 상대적으로 감소한 반면 호남 출신은 증가했고 검찰 및 경제관련 실세부처에는 호남 출신과 경기고 등 특정고교 출신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한국일보가 23개 주요 중앙 행정기간의 3급 이상의 보부 근무 고위공직자 415명의 출신지와 출신고교를 조사한 결과, 호남 출신은 125명(30.1%)이었고 영남출신은 130명(31.3%) 이었다.
국민의 정부 출범 1년만인 1999년에 본보가 실시했던 같은 조사에서는 영남이 151명(33.9%)이고 호남이 120명(27%)이었다.
특히 광주를 포함한 전남지역 출신자는 83명으로 문민정권 시절 대부분 요직을 차지했던 부산.경남 출신(66명)을 밀어내고 실세그룹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그동안 지역편중 인사에 대한 지적이 계속됐지만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출신 고교별로는 여전히 경기고가 최대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호남 지역의 고교도 급신장했다.
경기고와 경북고에 이어 광주일고 출신이 22명이나 됐다.
이에 따라 이한동 국무총리가 이날 발힌 3급이상 고위직에 특정지역및 특정학교의 인사 비율이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하는 비율상한제가 엄격하게 도입될 경우 호남지역 출신과 경기고와 경북고 등 소위 명문고출신이 대상이 될 전망이다.
부처별로는 총리실과 재경부, 검찰 등에 호남편중이 심했다.
총리실은 17명의 3급 이상 국장 가운데 6명이 호남 출신인 반면 영남출신은 4명에 불과했고 검찰은 광주.전남 지역 출신이 10명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검찰의 경우 특히 핵심 요직인 검찰총장 대검차장서울지검장 중수부장 공안부장 검찰국장 6자리는 전남 출신이 3자리를 차지했다.
경제관련 부처에서는 특정고교 출신의 편중이 심했다. 역대로 경기고 출신이 유난해 많은 재경부의 경우 고위공직자 20명 가운데 25%인 5명이 경기고 출신이고 금융감독위원회도 11명의 고위직 가운데 경기고 출신이 절반 가까운 5명이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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