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조셉 에스트라다 필리핀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며 마닐라 시내에 운집한 15만여명의 시위대에 군과 경찰, 정부의 핵심 인물들이 가세, 에스트라다 정권이 사실상 붕괴했음을 보여주었다.앙헬로 레예스 군 참모총장을 비롯, 국방부장관, 경찰 고위간부, 교육ㆍ 내무부장관 등 한때 에스트라다에게 충성했던 이들은 1986년 페르디난도 마르코스 전 대통령을 축출한 민주화 기념탑 부근의 시위 현장에 야당 인사들과 나란히 앉아 기자회견을 갖고 에스트라다의 대통령직 즉각 사임을 촉구했다.
레나도 데 빌리 전 국방부장관은 시위대에 반 에스트라다 진영에 가담한 군 주요 인사를 한 명씩 소개하면서 "군과 경찰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고 승리를 선언했다.
군 참모총장직을 사임하고 합류한 레예스 장군은 "우리가 복수심을 품지 않게 해달라"면서 에스트라다에게 조용히 물러날 것을 촉구했다. 앤드류 곤잘레스 교육부장관은 "다 끝났다. 에스트라다 정권은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날 군과 경찰의 지지 철회로 에스트라다의 몰락이 확실해지면서 에스트라다가 이미 국외로 망명했다는 소문이 한때 퍼지기도 했으나 두 차례에 걸친 에스트라다의 TV 출연으로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에스트라다는 첫 번째 TV 출연에서 상원의 탄핵재판 재개를 정국수습책으로 제안했으나 곧이은 군부의 지지철회 선언으로 궁지에 몰리자 두 번째로 TV에 나와 조기 대선 실시를 밝혔다.
이날 마르코스 전 대통령을 축출당시 군부의 핵심 장성이었던 리산드로 아바디아 등 필리핀 군사학교 출신 퇴역장성 60명이 에스트라다의 사임을 촉구하는 광고가 신문에 실리면서 쿠데타설이 대두되기도 했다.
또 군이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탱크 부대를 보냈다는 유언비어가 퍼져 '진실의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 옷을 입은 시위대가 한때 긴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레예스 참모총장이 군부의 에스트라다 지지철회를 발표하기 위해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안도의 한숨과 함께 승리를 자축하는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시위대 지도부는 에스트라다가 즉각 사임하지 않을 경우 말라카냥 대통령궁으로 행진, 에스트라다를 축출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