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개혁ㆍ개방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다. 2001년 새해 벽두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구 소련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를 연상시키는 '신사고'를 강조한 데 이어 중국을 방문, 개방의 심장부인 상하이(上海) 푸둥(浦東)지구를 시찰했다.이제 북한의 개혁ㆍ개방선언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그 배경과 과제, 전망을 짚어보았다.
■이종석(李鍾奭)
1958년 경기 남양주에서 태어났다. 1984년 성균관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93년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94년부터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재직하면서 현재 남북한관계 연구실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6월 남북정상회담때는 특별수행원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저서로는 '분단시대의 통일학'(1998) '북한- 중국관계:1945~2000'(2000) 등이 있다.
'中보단 체제수호 자신감
한정된 개방도 배제 못해 9~10월깨나 답방"
■조명철(趙明哲)
1959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1983년 김일성종합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87년 김일성종합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7부터 김일성종합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중국 난카이(南開)대 교환교수로 있던 94년 7월 한국으로 망명했다.
이후 지금까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있다. '남북경협 활성화를 위한 재도정비 방향'(2000) 등의 저서가 있다.
-북한은 이제 개혁ㆍ개방의 길에 들어섰다고 봐야겠지요?
▦조명철= 올 들어 노동신문이 신년사설에서 "자본주의 나라들이라고 해서 그들과의 대외관계를 개선해 나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하는 등 북한의 여러가지 움직임을 봐도 개혁ㆍ개방에 나서고자 하는 의지는 확고한 것 같습니다.
문제는 방법론이지요.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訪中)은 구체적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종석= 그렇습니다. 북한은 이미 1999년부터 '경제관계확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지속적으로 경제개방을 타진해 왔고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이후 개방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따라서 이번 방중은 김위원장의 오랜 암중모색을 통한 결단인 셈이지요. 북한은 올해를 21세기 원년이자 새로운 전환기로 봅니다.
즉 20세기가 제국주의 세력으로부터 체제를 보위하는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강성대국을 위한 경제력 강화의 시대라는 거죠.
▦조명철= 지금까지 북한의 개혁ㆍ개방에는 2가지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경제개방 지역입니다. 북한은 나진ㆍ선봉지구, 금강산, 개성공단 등 몇 곳을 개방했습니다만 이 지역은 모두 북한의 중심부와 떨어져 있어서 북한 산업과의 연계가 미약합니다.
따라서 이제는 북한도 변경지역이 아닌 남포나 원산, 신의주, 아니면 전격적으로 평양을 개방하는 쪽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둘째는 산업구조적 측면입니다.
북한에서는 공장을 한번 지어 놓으면 생산성에 관계없이 계속 가동됩니다. 하지만 노동신문 신년사설이 "60년대 방식을 청산하자"고 했듯이 이런 방식에서도 벗어날 듯 합니다.
이미 북한 내부 분위기조성은 끝났고 김 위원장이 직접 앞장을 서고 있는 형국입니다. 하지만 구체적 개혁ㆍ개방의 방향은 시간이 좀 지나야 가시화할 것입니다.
북한에서 연초에 어떤 정책이 나오면 2~3개월내에 대대적 궐기대회와 함께 내각ㆍ산하기관ㆍ작업장 별로 지침을 내리는 데 이걸 봐야 윤곽이 잡힐 것입니다.
▦이종석= 그런 점에서 오늘(19일)자 한국일보 1면 보도처럼 김 위원장이 귀국 후 개혁ㆍ개방에 대한 '대선언'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에서 김 위원장의 방문지가 상하이 푸둥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상하이는 또다른 경제특구인 선천(深土+川)지구와는 비중이 다릅니다.
선천은 중국의 중심부와 멀리 떨어져 있어 고립 상태로 경제개발이 가능하지만 상하이는 중국의 최대도시이고 중심입니다.
그런 점에서 김 위원장의 상하이 시찰은 북한의 개방의 영역이 넓어질 뿐 아니라 경제시스템의 개혁에만 머무르지 않고 필요하다면 국가구조와 행정구조의 일부를 고칠 수도 있음을 암시합니다.
-북한의 움직임이 미국 부시 행정부의 출범 등 국제정세 변화와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종석= 물론입니다. 경제적 문제 뿐 아니라 부시 행정부의 등장으로 국제정세가 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북한과 중국은 의견조율이 필요했던 겁니다.
부시와 주변인물들은 중국에 대해 견제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고 북한을 불량국가로 보는 등 대단히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시 행정부의 대동북아시아 정책이 보다 덜 강경한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했을 겁니다.
▦조명철= 부시행정부도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있음은 인정하지만 이것이 북한 내부가 변해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인권문제 등 변하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얘기지요. 따라서 김 위원장은 북한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던 거죠.
▦이종석= 그런 측면에서 김위원장의 조기 서울 답방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 같습니다.
국제사회에 기본약속을 지킨다는 것을 확인시켜 줘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 직전에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했다는 점도 조기답방설의 근거가 됩니다.
하지만 저는 2,3월중 조기답방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측 입장도 있으니까요. 우정부는 1ㆍ4분기에는 경제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남북관계는 '경제와 평화의 교환'이라는 원칙에 따라 움직여왔기 때문에 1ㆍ4분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회담의제에 대한 사전 조율도 필요하고요. 하지만 상반기 중에는 이뤄질 것으로 봅니다.
▦조명철= 제가 보기에는 올 하반기 쯤에나 가능할 것 같습니다. 우선 북한은 구체적 개혁ㆍ개방의 폭 등 큰 틀을 잡은 다음에야 정상회담에 임할 수 있을 겁니다.
둘째, 지난해 평양정상회담에서 나왔던 것 만큼 깜짝 놀랄 만한 의제나 현안이 아직 없습니다. 셋째로 김 위원장의 신변안전에 극도로 신경을 쓰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사전 준비를 위한 시간이 상당히 필요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서울로 오는 방법입니다. 이미 해로와 자동차의 육로 왕래가 이루어지고 있고, 지난해 김 대통령이 항로를 통해 평양을 방문한 만큼 김 위원장으로서는 경의선 완공 후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오고 싶은 욕심이 있을 겁니다.
따라서 적어도 경의선 완공 후인 9~10월께나 답방이 이루어 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북한의 정치체제가 개혁ㆍ개방의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까요.
▦조명철= 북한이 중국식의 개혁에 매력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와 정치시스템을 분리해 낸 가운데 경제발전을 이뤘다는 겁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북한이 개혁을 처음 시작할 때의 중국보다 정치체제 수호의 측면에선 더 자신감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북한에는 대부분 국민이 당이 어떤 정책을 결정하면 그것이 자본주의든 수정주의든 따라가는 환경이 조성돼 있습니다.
때문에 북한 지도부가 시장주의를 도입한다고 해도 논쟁거리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식이다'라는 논리만 만들어 내면 어떤 정책이든 추진할 수 있다는 얘기지요. 다만 외부세력이 들어와 북한 주민을 선동한다든지 하는 것에 대한 방지책은 세우겠죠.
▦이종석= 중국과 북한의 차이에 대해서는 따져봐야 합니다. 중국의 경우 1970년대 중반 덩샤오핑에 의한 개혁ㆍ개방이 시작될 때 문화혁명의 좌경적 착오에 대한 반성이 있었습니다.
즉 사회주의를 견지하지만 그 안에서 다원성을 받아들이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북한은 유일적 사고와 정치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강화했기 때문에 이것이 다원적인 시장주의와 부딪혔을 때 긴장관계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갈등에 어떻게 탄력적으로 대응할 것인가가 김정일체제의 과제입니다.
그렇다고 북한이 유턴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이미 북한은 내부의 자원이 고갈이 돼 북한이 모토로 내건 '자립경제'는 불가능합니다.
단지 체제에 위협이 되는 요소가 발생했을 때 이를 제거하면서 나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체될 수 있습니다. 북한의 개혁ㆍ개방이 이른바 갈 지(之)자 형태를 띌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조명철=북한이 체제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는 요소를 잘라 나가다 보면 결국 중국 등 특정국가에 의존하는 한정된 개혁ㆍ개방으로 흐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봅니다.
▦이종석= 사실 북한의 개혁ㆍ개방을 얘기할 때 북한만 보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미국이 어떤 대북 정책을 구사하느냐, 우리가 어떤 대북정책을 구사하느냐에 따라 북한의 운신 폭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북한이 외부세계로 나오려 할 때 우리나 서방세계가 북한을 더욱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을 상대하는 주요 서방국가들의 기존 대북정책에 대한 반성과 수정도 필요합니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김기철기자
kim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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