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지금 광주와 오키나와 베트남을 말하는가, '반공'과 평화유지'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학살과 만행이 임 공소시효가 끝난 것처럼 여겨 지고 있는 이 때에.동아시아 평화인권 한국위원회가 엮은 '동아시아와 근대의 폭력 1,2(삼인발행)는 이런 인식에 대해 '아니다'라고 외친다.
전후 냉전체제의 지배구조와 국가 폭력이 빚어낸 민중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피해자들은지금도 광주와 오키나와와 베트남에서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엄정한 현실인식 없이는 '제 2의 광주'는 언제, 어디서든지 생겨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책은 오키나와 대만 일본 한국 등 3개국 4개지역위원회로 구성된 동아시아 평화인권 국제학술회의가 1999년 11월 오키나와와 2000년 5월 광주에서 개최한 두 차례 학술대회의 성과를 묶었다.
한국위원회에는 역사문제연구소, 미군 범죄근절운동본부, 제주 4.3연구소 등이 참여하고 있다. 책에 실린 42편의 논문을 관통하는 시각은 "동아시아는 20세기 '집단광기'와 '국가폭력'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라는 것이다.
미군에 의한 노근리 주민 학살만을 주장할 게 아니라,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양민 학살에 대해서도 철저한 조사와 아픈 참회가 있어야 한다는 비판이다.
강정구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가 비판의 선두에 섰다. 그는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과 역사 청산'이라는 글에서 여러 자료와 증언을 근거로 한국군의 베트남 ?瀆? 학살 유형을 적시하고 정부와참전 군인들의 조속한 참회를 요구한다.
베트콩과 양민을 구별할 수 없었다는 그들의 상황 논리만으로 역사적.형사적 처벌을 피할 수 없으며, "박정희 독재와 미국의 오만이 원천적으로 양민 학살을 잉태했다"는 주장을 편다.
제주 4.3사태 역시 국가폭력과 집단 광긱 만들어낸 비극의 역사로 거론된다. 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는 '국가폭력과 트라우마'에서 1948년 10,11월 두 달 사이에 2,000여 명의 비부장 민간인이 사살된 것은 인간고 생명에 대한 더할 바 없는 모독이자 만행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민간인 토벌대를 움직인 것은 정교한 이데올로기 교육이 아니라, "저기 빨갱이들이 있다'는 광기어린 주술이었다고 덧붙인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치바나 소이치 오키나와 의회의원이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그는 "광주 코뮌에서 민주화를 위한 10일간에 걸친 무장투쟁은 당시 감동과 공감 그리고 선망과 경의로 내게 다가왔다."며, 경제침략을 위해 한국 내 강권지배를 용인한 일본 정부를 조목조목 비판한다.
이러한 일본정부의 태도는 1945년 일본군에 의해 오키나와 민간인 15만 여명이 사살된 때부터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통시적인 분석까지 내놓는다.
책에는 이밖에 오키나와 주둔 미군 병사들에 의한 현지 여성들의 성폭력 범죄, 일본 천황에 의한 오키나와 약탈, 동아시아 소수민족의 고통과 투쟁 등에 관한 참담한 증언들이 생생하게 실려있다.
그 증언은 다음의 짧은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제어되지 않은 국가의 폭력성은 동아시아 민중의 생존과 인권을 송두리째 파괴해 왔다. 국가 폭력에 의해 수많은 민중은 목숨을 잃고 자유와 청춘과 미래에 대한 꿈을 강탈당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국가 폭력과 민중 간의 어정쩡한 화해가 아니라, 동아시아 평화 정착을 위한 뜨거운 지역 연대와 냉정한 현실 인식이다."
김관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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