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말 출산 예정인 김모(29ㆍ경기 안양시 비산동)씨는 설 연휴를 앞두고 "배 속에 든 아기가 벌써부터 '효자'노릇한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시어머니가 "몸도 무거운데 집에서 쉬어라. 그게 피차간에 편하겠다"고 미리 말해줘 이번 설은 시집에서 쇠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젖먹이가 생긴 다음 명절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이번 설 연휴는 주초와 주말을 쉬는 직장이 많아 거의 일주일 안팎으로 길어졌다.
'연휴'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명절이 되면 주부들은 몸과 마음이 바쁘고 피곤해진다. 일주일 전부터 장보고, 하루 전에는 종일 음식장만하고, 당일에는 끼니마다 상 차려내고 설거지하고, 그리고 모처럼 여유롭게 연휴를 즐기는 식구들 뒤치다꺼리까지.
미도파백화점이 주부 고객 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84%가 '명절증후군'을 겪는다고 대답했듯이 '명절증후군'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한국가정경영연구소 손정숙 연구원은 "친정에 맘놓고 갈 수 없을 정도로 시집 위주로 명절을 쇠고 일도 평상시보다 많다 보니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지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게 문제. 손씨는 "남성들의 배려를 기대해보지만, 사실상 남편들이 가사노동을 분담해준다거나 친정을 먼저 챙겨주는 경우를 찾아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씨도 "남편이 '뭘 도와줄까'라며 주방을 기웃거리기도 하지만 결국 남자들은 텔레비전 앞에서 갖다 바쳐주는 음식이나 먹고 있다"며 "차례를 지내고 설거지를 끝내면 곧 점심 한상 차려내고 또 치우고 나면 저녁 때가 된다. 여자들만 죽어라고 일을 하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남성의 도움을 기대하느니 차라리 여자들끼리 뭉치는 편이 명절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한결 낫다. 맏며느리인 최모(29ㆍ서울 송파구 잠실동)씨는 시집이 큰집이지만 명절에 가장 큰 부담인 제사음식 걱정을 덜었다.
시어머니가 오래 전부터 동서들끼리 떡, 전, 고기, 나물 등 제사음식을 분담해 준비해와 명절을 지냈기 때문이다. 정작 최씨는 밥과 국 정도만 준비하면 됐다.
한국여성민우회에는 '형제들이 음식을 나누어 준비해왔다' 외에도 '제사 후 가족이 즐길만한 음식을 중심으로 간단히 제사를 지냈다' '뷔페식으로 식사를 준비해 남는 음식이나 설거지감을 줄였다' '제사 후 가족이 즐길 만한 음식을 중심으로 간단히 제사를 지냈다' '명절제사와 일반제사를 장남 차남 구분없이 나누어 지냈다'등과 같은 명절관행 깨뜨리기 사례가 소개됐다.
'며칠간의 명절 동안 한두끼는 남자들이 식사를 준비해 여자들이 휴식을 겸해 외출하도록 했다'거나 '한두번 정도는 단체외식으로 해결했다'는 꿈 같은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오랜 관습으로 자리잡아 온 명절 관행을 한꺼번에 바꾸자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여성민우회는 명절 연휴 동안 친정나들이를 빠뜨리지 말 것을 권했다. 김씨는 "시댁이 우선이라지만 친정을 배려해야 한다. 시부모들도 이 점을 이해해 며느리에게 친정 나들이 시간을 주어야 한다. 유일하게 주부들이 마음과 몸을 쉴 수 있는 곳이 친정이다"고 말했다.
문향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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