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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 예술의 성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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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 예술의 성직

입력
2001.0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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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湖岩) 문일평(文一平ㆍ1888~1939)은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대표적인 사학자이다. 1909년 일본 메이지(明治) 학원 중등부를 마치고 귀국한 뒤 주로 신문과 잡지에 1,000여 편에 가까운 계몽성 짙은 글을 발표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평생을 바쳤다.'예술의 성직'(열화당 발행)은 그가 1929~37년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글들을 묶은 한국 예술가론이다.

책은 고조선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음악 회화 서예 한시 등에 나타난 우리 예술의 아름다움을 서술한 '사상(史上)에 나타난 예술의 성직(聖職)'과, 여옥 처용 황진이 등 예술가의 사랑을 다룬 '예술과 로맨스'등으로 구성됐다.

안견 강희안 신사임당 윤두서 정선 등 조선시대 대표적인 화가 20여 명을 소개한 '조선 화가지(畵家誌)', 추사 김정희론인 '완당선생전(阮堂先生傳)'도 실렸다.

그가 언급하고 평가하고 옛이야기를 들춰낸 예술가는 한국 예술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인물들이다. 황룡사 벽화를 그린 솔거와 일본 호류지(法隆寺) 벽화의 주인공 담징서부터, 풍류아 처용과 서예의 대가 김정희에 이르기까지 모두 100여 명이다.

이들에 대한 사전식의 건조한 설명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깊은 인문학적 통찰이어서 더욱 반갑다.

담징의 벽화에서는 을지문덕이 활약하던 당시 고구려의 융성을 읽어내고, 겸재 정선의 산수화에서는 나이 80이 넘어서도 붓 놀림을 연습했던 노력하는 천재의 이면을 들춰냈다.

매천 황현이 20세 때 지었다는 '도촌춘효(島村春曉)'라는 한시를 조용히 읊고서는 이 사람 이후 조선 한시의 역사가 끝났음을 애석해 한다.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저자의 해박한 지식세계도 놀랍지만, 그의 담백하고 맛깔스러운 문장을 읽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황진이가 지족 선사와 화담 선생을 시험한 결과가 어찌 되었느냐 하면, 고목사회(枯木死灰) 같은 지족은 그만 미인의 술(術) 중에 떨어짐을 면치 못하였으되.'로 시작하는 글을 누가 끝까지 안 읽겠는가. 경박하고 황폐한 언어가 난무하는 요즘, 찬찬히 일독할 만한 고품격 예술가론이다.

문일평 지음, 열화당 발행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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