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고치를 갓 벗어난 나방이 된 것 같습니다. 현재 모습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허물 벗기를 시도하는, '깨어 있는 아줌마'로 살고 싶습니다."차병원 산부인과 의사 고명인(40)씨는 대단한 사람이다. 그는 1988년 전업주부로 평범한 삶을 살다가 느닷없이 중앙대 의대에 진학, 결국 2년 전에 전문의가 됐다. 결혼 전에는 MBC 아나운서로 2년 동안 일한 경력도 있다. 손석희 이창섭씨 등이 입사 동기이다.
'나도 세상에 태어난 값을 하고 싶다'(명진출판 발행)는 이런 그가 토로하는, "나는 왜 변신할 수밖에 없었나"에 대한 또렷또렷한 변론이다.
그가 대단한 이유는 선망의 대상이 되는 직업을 섭렵해서가 아니다. 편안히 살 수 있는 환경을 박차고, 주위의 비웃음을 뒤로한 채 위험한 모험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꽃으로만 취급 받는 것이 참을 수 없었고, 술 취해 늦게 귀가하는 남편만을 기다리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가 당시 그를 송두리째 짓누르던 물음이었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고, 주부로서 그냥 집안에 주저앉아야 하는 현실이 싫었습니다. 저도 태어난 값을 하고 싶었어요.
당시에는 의사가 되는 게 목표가 아니라, 현실이 주는 무력감에서 탈출하는 게 목표였습니다.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하지만 그는 이 책에 대한 동료 아줌마들의 반응이 내심 두렵다. 결혼한 주부가 불과 6개월 여만의 '재수생'생활 끝에 의대에 진학한 사실 등이 자칫 '슈퍼 우먼의 자기 자랑'으로 비춰질 것 같아서다.
"'별난 여자의 성공담'정도로 제 글이 읽히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삶의 한 모퉁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모든 여성들에게 동료 여성이 속삭이는 이야기쯤이면 좋겠습니다.
그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지레 체념하거나 겁먹지 말라고. 인생의 시간표에는 무엇 하나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고."
김관명기자
kimkwmy@ 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