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자들에게 현재 우리나라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예상은 그리 어렵지 않다.1월 17일자 한국일보를 한번 펼쳐보자. 1면의 이회창총재 회견기사, 권영해씨 소환조사 기사, 그리고 2면 사설에서 7면 김창열칼럼에 이르기까지 온통 안기부 예산 유용과 관련한 문제들이 의제다.
한국일보 관점으로는 안기부 선거자금 지원에 대한 검찰 조사, 그로 인한 정치 불안정이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임이 분명해 보인다.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일 수 있다. 그래서 온통 우리는 그것만 생각하고 토론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를 알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해야 될 것도 같다.
그러나 신문을 한 면 한 면 넘기면서 가슴 한구석에 쌓여만 가는 불안함은 어떤 연유일까? 정쟁(政爭) 기사로 가득 차있던 7면까지 넘기고 나면 경제면이 시작된다.
어려운 우리 경제에 관한 기사들과 함께 부동산, 신용카드 특집기사가 이어진다. 다음은 국제면, 그곳에는 역시 외국의 정치 스캔들, 사고에 관한 기사가 있다. 여기까지 읽고 나자 막연히 느끼던 불안감이 더 구체화된다.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칠 어떤 사건이 세상 어느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데도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불안감이다.
경제면으로 돌아가 보자. '대우차, 2, 794명 정리 해고'라는 큼지막한 제목의 기사가 눈에 띈다. 그래 바로 이거다. 포드와의 인수협상 실패 결과가 거기에 있었다.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어가고 있는 세계에서 나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사건은 국내 정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지구 저편 미국의 조그만 금리변화나 대만 기업의 반도체 시장 진입에 대한 정보도 통합된 시장에서는 국내 정보만큼이나 중요하다.
특히 97년 환란 이후 외국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 우리의 삶을 생각할 때 어처구니없는 국내 정치만 생각하고 있을 수 없다.
17일자 미국 일본의 유수 신문들을 살펴보자. 매우 중요한 기사가 눈에 띈다. 차기 미 재무장관 국회인준 청문회가 열린단다.
이 청문회는 부시 정권의 달러 정책에 대한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구구절절 말하지 않겠다.
경제면, 국제면, 종합면 어느 면을 살펴보아도 이에 대한 기사는 없다. 중국 금리자유화와 관련한 중국 인민은행 총재의 인터뷰 기사, 유로권의 경제 성장 둔화 예측에 관한 기사, 루빈 전 미 재무장관의 미국 경기 예측에 관한 기사, 마닐라 증권거래소 브로커 파업에 관한 기사 등이 16, 17일에 로이터가 전세계로 타전하고 미국 일본의 여러 신문에서 읽을 수 있었던 기사들이다.
이중 그 어느 기사도 한국일보를 포함해 우리 일간 신문에서는 찾기 어려웠다.
세계화(Globalization)가 무엇인가. 정치적 구호의 차원이 아니라 관찰 가능한 실체적 차원에서 파악할 때 세계화라는 것은 세계적 수준에서의 시장의 통합을 의미한다.
앞으로의 우리 삶에서 시장의 의미, 특히 세계 시장의 의미가 중요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에 대해 알아야 하고 더 많이 생각해야한다.
좀더 국제화한, 세계화한 기사를 읽고 싶다. 추악한 정쟁으로 가득한 정치 뉴스보다 지리적으로 먼 곳의 일이라도 정말 나와 가족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알고 싶다.
더욱 더 시장 중심적이고 더욱 더 글로벌화하는 세상에서 한국일보의 경제면은 더욱더 국제화 되고, 국제면은 더욱더 경제면화해야 할 것이다.
안민호ㆍ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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