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안기부 선거자금 수사가 '예산 횡령'만을 처벌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돈을 받아 쓴 정치인들까지 대거 소환 조사하겠다 던 강경자세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다.새해 벽두부터 '국기문란'과 '야당탄압'주장이 엇갈리던 격렬한 정치권 공방도 이쯤에서 수습될 조짐이다. 결국 이럴 일을 왜 그토록 난리 쳤는지, 지켜보는 국민은 어이가 없다.
그러나 검찰의 방향전환은 올바른 선택이라고 본다. 대검차장의 말처럼, 그것이 상식과 법리에 비춰 무리가 없다.
특히 그릇된 과거 청산작업이 민생을 외면한 극한적 정쟁을 부추기는 상황은 빨리 끝내야 마땅하다. 우리가 진상은 신속하게 규명하되, 정략에 얽혀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바탕에서다.
물론 국민은 국가예산으로 추정되는 1,200억원을 국회의원 후보 수백명이 나눠 쓴 사건을 대충 처리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다.
야당의 주장은 '물타기'로 보더라도, 모든 정치자금 의혹을 특검제 라도 도입해 샅샅이 규명하자는 여론이 우세하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정치적 판단으로 수사를 축소하는 것에 여론의 질타가 쏟아질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런 원칙론은 정치와 선거를 막대한 불법자금으로 꾸려온 관행을 사회가 사실상 용인해온 것과 배치된다.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정치권이 상대만을 탓하는 것은 위선이지만, 지난 비리를 모두 파헤치자고 주장하는 것도 현실성이 없다.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여론도 동시에 이 사건을 정략적 야당압박으로 여기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검찰과 여권은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검찰이 사건을 들고 나온 동기는 따지지 않더라도, 지레 '국기문란'으로 규정하고 정치인 수사 확대를 떠든 것은 경솔하고 현명치 못했다.
여권이 대뜸 야당 총재를 걸고 들어가고, 수사를 조율하는 듯 비친 것도 시급한 정국안정을 외면한 것이었다.
이러니 정략적으로 사건을 키웠다가, 전직 대통령과 옛 여권출신 자기쪽 인사들의 연루사실이 부담되자 슬며시 수습하려 한다고 비판 받는 것이다.
이제 안기부 자금이 국가예산인지 통치자금인지에 관한 시비는 법원에서 가릴 일이다. 검찰이 할 일은 지금부터라도 정치적 고려를 떠나 진상을 있는 그대로 밝혀내, 앞날에 경계로 삼는 것이다.
또 정치권은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국정원 예산과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높이는 제도개선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그 것이 너 나 없이 비리에 젖은 과거를 진정으로 청산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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