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가 화두인 요즘 우리 정치 지도자들도 세계화에 합류한 듯 하다. 걸핏하면 외국의 사례를 들어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을 보면 평소 상당한 연구를 한 것 같다.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의원 임대'사태를 놓고 자민련의 김종필 명예총재가 한 말이다. 김 명예총재는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도 당적을 옮긴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라며 민주당 의원 몇 명이 자민련으로 당을 옮긴 것을 당연하다는 투로 말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중 하나는 바로 국민이 직접 자신들을 대표하는 인물을 뽑아 의회에서 의견을 대변토록 하는 것이다.
의회 민주주의가 얼마나 성숙했느냐에 따라 세계에서 그 국가의 정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볼 수 있다.
우리는 세계사에서 아마 최초로 의원들을 임대해주는 제도까지 정착시키고 있으니 세계화의 '첨병 국가'임에 틀림없다.
김 명예총재가 언급한 처칠은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가이자 세계적으로도 존경받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처칠과 관련된 많은 에피소드 중 가장 재미있는 사례를 들면 '교통위반'사건이 압권이다.
처칠이 의회 개원시간에 늦자 운전기사에게 교통신호를 위반하고 달리라고 지시했다. 마침 교통 경찰이 처칠이 탄 차를 적발했다.
운전기사가 처칠 총리가 탄 차라고 하자 이 경찰관은 뒷자리에 앉아있는 처칠을 보며 "처칠 총리 같은 분이 교통위반을 할 리가 있느냐"며 딱지를 뗐다.
처칠은 이후 경시청장을 불러 이 경찰관의 근무자세를 높이 평가하면서 진급을 시키라고 지시했다. 경시청장은 "경찰인사법에는 특진시키는 규정이 없다"면서 총리의 지시를 거부했다.
1900년 영국 보수당 소속으로 하원의원이 된 처칠은 4년 후 당의 보호관세정책에 반대해 자유당으로 당을 옮겼다가 1차 대전후인 1921년 자유당의 노동정책에 대해 반발해 다시 보수당으로 돌아갔다.
당 정책과 자기신념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칠은 물론 유권자들에게도 자신의 당적 변경에 동의를 구했다.
처칠은 2차 대전이라는 국가위기 상황에서 국민에게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주기를 당부하면서 국민을 결집해 결국 나치독일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영국 국민과 지도자는 이처럼 한 마음이 돼 국가위기를 극복했다. 만약 영국에서 보수당과 노동당이 서로 집권하기 위해 의원 빼내가기를 했다면 국민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이처럼 외국의 지도자들과 국민의 경험과 행동 등을 본받아 사고의 틀을 넓히고 의식과 생활을 국제적 수준으로 높이는 것이 세계화라고 우리식으로 좁혀 해석한다면 과언일까.
외국의 사례를 자신의 논리에 맞게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 외국의 시행착오는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21세기를 맞는 첫 해 우리는 국가적 위기에 빠져 있다.
이 같은 위기를 극복하자면 새 시대를 이끌어 갈 새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국가예산을 정치자금으로 지원했던 안기부의 원조인 중앙정보부 초대 부장이었던 JP 같은 인물이 새 시대에 적합하지 않은 지도자라는 주장도 있다. 지는 해의 노을은 원래 붉은 색이며 주변과 어우러져 자연적으로 아름답게 보인다.
궤변보다는 건전한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성공할 수 있다.
이장훈 국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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